<효문화 신문>

▲ 곽성희 명예기자
▲ 곽성희 명예기자

작년 가을 여고 친구들과 함께 엄마들을 모시고 두 번째 여행을 다녀왔다. 푸른 동해바다의 풍경을 같이 바라보고 뺨에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결을 함께 느끼며 엄마의 느린 발걸음을 따라 걸었다. 엄마가 웃을 때 따라 웃고, 엄마가 슬플 때 함께 슬퍼서 일까! 세 모녀들의 모습은 엄마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딸들의 모습이 투영된 엄마들은 지난 번 여행보다 발걸음이 조금 더 느려져 있었다. 문득 함께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음을 말해주는 것 같아 과거인 듯 미래인 듯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됐고, 걸을 수 있을 때 엄마와 또 소풍을 오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났고 어느새 나뭇잎 곱게 물든 가을이 찾아와 곱고 고왔던 그 때 그 가을빛을 기억하느냐며 질문을 던졌다.

엄마의 마음에도 가을이 찾아왔나요?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자신들 보다는 자식들의 시간을 따라 살고 있다. 자식을 위해 챙겨야할 것들을 살피며 당신의 시간들을 내려놓으며 오로지 자식의 희노애락에 따라 과거로, 때로는 미래로 오가며 당신의 마음 안에 자식들의 소원을 품는다. 마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라는 유치환 시인의 ‘행복’이라는 시처럼 자식에게서 행복이라는 것을 찾고 있는 것만 같다.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 중 우울한 사람과 불안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공통적 요인은 바로 시간이라는 개념이다. 현재라는 공간과 삶에 머물지 않고 먼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람을 상담치료 현장에서는 우울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또 너무 먼 미래에 머물러 있는 사람을 불안한 사람이라고 한다. 지금 이 시간과 장소에 머물지 않고 과거에 있었던 어떤 일·어떤 장소에 머물러 끊임없이 반추하며 지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우울한 사람일 수 있다. 그리고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생각하며 그 일만을 준비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불안한 사람일 수 있다.

즉 현재라는 공간에 머물지 못하고 너무 먼 과거로 또는 너무 먼 미래로 오간다면 그 사람의 머릿속은 늘 복잡하고 엉켜있어 심리적인 멀미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오로지 현재에만 집중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때로는 과거 어떤 일을 거울삼을 필요도 있고, 미래를 위한 합리적인 준비도 필요할 때가 있다. 다만 지나치지 않도록 늘 마음의 시계를 현재에 맞춘다면 심리적으로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가을 단풍처럼 알록달록 아름답게 물들 수 있고 차곡차곡 행복한 삶을 만들어갈 수 있다. 지금이 쌓여 나의 과거가 되고 미래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 노오란 국화꽃 향기를 맡으며 가을이 내 마음을 두드리고 있음을 알았다. 문득 지금 내 앞에 온 가을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나의 가을도 없고, 엄마의 가을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늘 엄마의 마음을 차지하며 엄마가 주시는 선물만 받았는데 이 가을엔 엄마에게 향기로운 가을빛을 선물해주고 싶다. 지금 우리 앞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고운 가을빛을 부모님들에게 선물해드리면 어떨까… 엄마! 가을이야, 소풍갈까? 곽성희 명예기자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