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가 미친 사회에 던지는 조소

▲ 영화 '조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 영화 '조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한 남자가 웃는다. 기뻐서가 아니다. 병이다. 웃음이 자꾸 터져 나온다. 자기 맘대로 멈출 수도 없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애석하게도, 마음은 웃질 않는다. 어쩌면 광대(그의 직업)의 삶과 닮았다. 웃는 게 고통스러울 정도다. 슬퍼도 웃는다. 화나도 웃는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데, 아니다. 영화 '조커' 속 아서는 박복하다. 웃기에 매 순간이 곤란하다. 이로 인해 폭행도 당한다. 멸시도 당한다. 참, 기구한 인생이다.

☞영화 '조커'가 화제다. 관객 450만 명을 넘겼다(21일 기준). 코믹스 영화 최초로 황금사자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화제작인 동시에 문제작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살인을 미화했다는 논란이 있다. 모방 범죄 우려도 낳았다. 이 영화는 악당 '조커'의 탄생 배경을 그렸다. 정신병을 갖고 있는 아서가 악당 '조커'가 되는 과정이 나온다. 아서의 삶은 누가 봐도 안쓰럽다. 그러다 보니 그를 동정하게 된다. 나아가 공감하게 된다. 호아킨 피닉스의 미친 연기력도 한몫한다. 관객은 어느새 조커가 된다. 그의 삶에 녹아든다. 이러다 보니 누군가는 악행을 합리화한다는 거다. "그럴만했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하지만 범죄엔 면죄부가 없다. 불행한 모두가 잘못된 선택을 하진 않는다.

☞조커를 '사회가 낳은 괴물'이라 말한다. 앞서 말했듯이 누구나 '괴물'이 되진 않는다. 하지만 사회의 책임은 분명 있다. 그는 고담시에 산다. 고담시는 극단적인 빈부격차의 도시다. 모두가 화나있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벌레 보듯 한다. 가난한 사람도 행복하진 않다. 궁핍한 현실 탓에 가시가 박혀있다. 금방이라도 물어뜯을 준비가 돼있다. 이 도시는 평범함조차 어렵다. 버스에서 아기를 웃기는 것, 피에로로 그냥 일하는 것, 상담을 지원받는 것….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이렇듯, 병든 사회이기에 조커는 영웅이 된다.

☞씁쓸하게도 우리 현실도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서로를 '깔보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래서 갑질 논란도 빈번했다. 자기보다 못하면 당연하듯 무시한다. 버스에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재촉하는 시선, 장애인이 지나가면 흘끔거리는 시선, 허름한 옷차림의 사람을 훑어보는 시선…. 지금도 어딘가에선 존재한다. 대화에서도 나타난다. "할 수 있는 게 뭐야?", "너 못하잖아", "네가?"…. 누구나 한 번쯤 들었을 말들이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남을 깎는다. 어쩌면, 조커도 웃지 않고는 못 버티지 않았을까? 미친 세상에 웃을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깔보는 사회를 비웃듯 깔깔거리던 조커가 생각난다. 편집부 김윤주 기자 maybe0412@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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