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영원한 브로맨스, 마르크스와 엥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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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영원한 브로맨스, 마르크스와 엥겔스
  • 충청투데이
  • 승인 2019년 10월 20일 16시 03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0월 21일 월요일
  •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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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순 청주시 서원보건소 감염병관리팀장

냉전시대 서구에서 마르크스는 모든 악을 낳은 악마이자 무시무시하고 사악한 종교의 창시자이자, 반드시 억눌러야만 하는 해로운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의 평생 경제적 지원자인 엥겔스는 19세기 당시 세계 최대 방직공장의 아들이자 관리자였다. 이 둘은 '공산당선언'을 공동 집필한 저자로,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 국가와 인접한 우리에게는 학창 시절 반공사상을 강조한 학습 때문에 멀리해야 할 대상이었다. 1980년대 말 민주화 혁명으로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가슴을 들끓게 했던 이들의 저서는 불온서적으로 몰려 이들의 책을 보관한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들려간 것을 영화나 TV프로그램 등 여러 매체를 통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에겐 멀리해야만 했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브로맨스는 계산과 이익을 중시하는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진한 우정과 의리로 돋보인다.

요즘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관해 공부할 기회가 있어 여러 자료를 찾아보게 됐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9세기 말의 자본주의 실태에 대해 고발하고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에 힘쓴 실천하는 사회개혁가로 묘사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노동자들을 선동해 국가를 타도하고 그 시대 당시 정부를 규탄하는 글을 쓴 선동가로 묘사되기도 했다.

하지만 필자는 이 두 사람의 옹호와 비판의 글은 뒤로하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인간적인 면을 보게 됐다. 마르크스는 영국에 살던 시절 좌파 경향의 신문사에 기고를 게재하거나 가끔 강연만 했을 뿐 뚜렷한 직업도 없이 런던의 대영박물관에서 책을 읽으며 살다시피 했고, 평소에는 사교와 연회를 즐겨 했다고 한다. 변호사인 아버지와 생활력이 강한 어머니에게 자란 마르크스는 어려서부터 경제적으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는데, 대학 시절에도 사치를 일삼고 사교 파티에 가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법률학을 전공하고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고학력 백수였던 마르크스는 부모의 유산과 친척들의 유산을 받아 모두 탕진한 후 생활비가 끊기자 엥겔스에게 몇 파운드씩을 구걸하며 경제적 지원을 받았는데 항상 직접적으로 돈을 꿔달라고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주일 전 저고리를 전당포에 맡기는 바람에 외출을 못 하고 외상 갚을 돈이 없어 이제는 고기를 먹을 수 없는 유쾌한 지점에 이르렀네", "지난 열흘간 집에 돈이 한 푼도 없었네"라고 하며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너무도 당당한 마르크스의 차용(借用) 요구에도 엥겔스는 "이 가난한 현자를 뒷받침하고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나의 역사적 의무로 받아들인다"라며 평생 마르크스의 경제적 지원자임을 자처했다.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자신의 돈으로 딸들에게 사교댄스를 가르치고 대저택으로 이사를 한다거나 하는 사치를 부린다는 점을 알면서도 묵묵히 경제적 지원을 했다. 여기에다 엥겔스는 자신의 공장 회계를 속여 마르크스의 생활비를 대주는 것도 모자라 마르크스가 청탁받은 기고를 대필해 주기도 하고 마르크스의 가족이 아프다고 하면 당시 약으로 쓰이던 와인들을 보내줬고, 마르크스가 사망한 후에는 그의 딸 라무라 일가의 생계를 보살폈다고 한다. 또한 마르크스의 그 유명한 '자본론'도 제1권은 마르크스가 간행했지만 제2권과 제3권은 엥겔스가 악필인 마르크스의 글을 정리해 출간했다고 하니 엥겔스는 자신이 말한 대로 마르크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평생의 의무로 생각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가치관과 뜻이 같다는 이유로 평생 경제적 지원을 해준 엥겔스와 그 호의를 받은 마르크스의 관계를 보며 정말 진정한 우정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나에게도 오랜 친구가 있다.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 한 통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