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초록 기차를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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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 초록 기차를 타자
  • 충청투데이
  • 승인 2019년 10월 15일 16시 24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0월 16일 수요일
  •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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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

상상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아이가 그린 상상의 세계로 들고 싶다. 기차에 편승하면 기분은 마냥 좋아지리라. 내가 원하는 곳, 머물고 싶은 장소에 조건 없이 데려다줄 것만 같다. 단순 미학의 창조자, 스페인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이다. 그의 그림전이 청주문화관에서 23일까지 열린다. 천진난만한 만 5세 꼬마의 선명한 그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해맑은 기운을 얻는다.

인간은 얼마나 간사한가. 마음은 또 얼마나 변덕이 심한가. 하나의 실루엣을 가지고 온갖 기묘한 것을 지어낸다. 소설가 이상은 한여름 짙푸른 초록을 바라보며 '권태'라는 글을 낳지 않았던가. 권태를 일으킨 초록과 레오나르도의 초록의 느낌은 다르다. 일명 '초록 기차', 이 그림을 그렸을 아이의 머릿속은 온통 초록색으로 뒤덮였으리라.

마치 초록 말고는 그 어떤 색도 들어올 틈이 없다는 듯 자연의 무한성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마음은 무한히 부풀어 하늘에 닿고, 자아는 끝없이 확장되어 세상을 가득 메운다. 언어의 길이 무너지는 숭고의 순간이다.

초원의 정점은 흰 기차와 철로이다. 풀밭 중간에 검은색 실선을 가로는 길게, 세로로 짧은 선을 여러 개 그려 놓는다. 켄트지를 세로로 놓으면, 하늘로 오르는 층층다리처럼 보인다. 계단 아래쪽은 넓게 퍼지고, 위로 갈수록 계단은 좁아진다.

하지만 대상이 기차와 비슷하니 철로를 그린 것이다. 그의 형상은 마치 희귀한 흰 뱀이 꾸물꾸물 기어가는 모습도 같고, 생선의 살을 발라낸 가느다란 흰 뼈다귀 모습처럼도 보인다. 아니 땅속에서 수백 년 묻혀 있다 드러난 백골의 형상 같기도 하다.

그림을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백골은 너무 비약인지도 모른다. 그림은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은 달라지리라. 꼬마 작가가 그린 그림의 의도를 모른다. 그를 직접 만난 적도 없고, 그가 살아온 삶의 환경도 모른다. 백지의 상태에서 이 그림을 ‘초록 기차’라고 부른다. 작품명이 무엇이면 어떠랴. 나이가 들면 대부분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구십이 된 노인은 오감이 퇴화해 대화 중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미래에 다가올 정지된 시선을 벗어나려면 상상력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 필요하리라.

현실이 답답하게 가슴을 누를 때 초록 기차를 바라보자. 기차가 아니어도 좋다. 나를 변화시킬 대상을 향하여 하나의 통과 의례처럼 정화 의식처럼 거행한다.

자연이 선물한 신의 빛깔을 즐기는 전시회다. 방금 유년 시절 동경한 기차가 눈앞에 당도해 있다. 망설이다 기차는 또 놓치고 말리라. 꼬마 화가가 켄트지 위에 한 점 흔들림 없이 선을 긋고 색칠하였으리라. 그의 순수에 단 몇 분이라도 온 감각을 열자. 지금 난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초록 기차에 탑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