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글밭] 4차 산업혁명의 전제 조건
상태바
[화요글밭] 4차 산업혁명의 전제 조건
  • 충청투데이
  • 승인 2019년 10월 14일 16시 15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0월 15일 화요일
  • 22면
  • 지면보기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영균 대전도시공사 사장

개화초기의 일화 한 토막이다. 미국 선교사 알렌이 궁궐마당에 테니스 코트를 설치하고 고종황제 앞에서 경기를 시연했다. 고종이 경기관람 후 혀를 차며 말했다. "재미는 있는데, 저 힘든 걸 아랫것들에게 시키지 않고..." 사실인지 지어낸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이 일화에서 아직 서구문물을 받아들일 준비가 덜된 조선사회 의식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서양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미국에 대륙횡단철도가 부설되면서 교통혁명이 일어나자 역마차 업자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북미대륙 육상교통에서 한세기 이상 독점적 지위를 공고하게 점하고 있던 역마차는 자신보다 훨씬 빠르고 안전하고 수송량이 많은 열차의 등장을 반길 리가 없었다. 철도용지 매입을 방해하고 의회에 로비를 펼쳤지만 기술의 진보와 대중의 요구까지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제도와 산업은 발달했지만 이에 미치지 못하는 의식의 괴리는 고금(古今)과 동서(東西)를 가리지 않는다. 지금도 곳곳에서 그 격차로 인한 충돌이 발생하면서 공동체의 발전과 단합을 방해하고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통신을 예로 들어보자. 지하철이나 시내버스에서도 터지는 우리나라 와이파이는 외국인들의 부러움 대상이고 5G통신을 세계최초로 상용화했다. 반도체와 통신장비 제조기술도 최상위권에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인터넷문화도 과연 세계 최상위권에 있다고 답할 수 있을까? 익명성의 장막 뒤에 무례와 비상식이 숨어있는 우리의 인터넷문화는 기술의 진보를 따라오려면 한참 멀었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회전교차로는 신호등이 필요 없고 원활한 교통흐름에 유리하다. 회전교차로의 장점은 이용자들이 정해진 약속을 준수할 때만 유효하다. 먼저 진입해 회전하고 있는 차량이 있는데도 잠시 기다려야 하는 약속을 깨뜨리고 무리하게 끼어들어 흐름을 방해하는 운전자가 많아지면 회전교차로의 장점은 사라져 버린다. 의식과 제도의 격차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4차 산업혁명'은 최근 수년사이에 미디어를 통해 새롭게 등장한 말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한 고도화 된 정보사회를 구현하고 이 과정에서 더많은 일자리와 부가가치의 창출이 기대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은 당연히 4차 산업혁명에 역량을 집중하는 중이고 대전시도 아예 '4차 산업혁명 특별시'를 시정의 핵심목표로 잡고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이 1·2차 산업혁명의 불을 지필 때 우리나라는 여전히 농경사회였다. 압축성장의 덕분으로 정보산업이 중심이 된 3차 산업혁명은 뒤쳐지지 않았지만 시민의식의 발전은 여전히 아쉬운 게 사실이다. 남들이 2세기에 걸쳐 이룬 성장을 불과 반세기에 이루다보니 필연적으로 제도와 의식의 격차가 생겨났다.

대전은 대덕연구단지와 연계성, 국토의 중심이라는 지리적 장점 등 여러 가지 여건상 4차 산업혁명의 거점도시가 되기에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일찍이 孟子가 말했듯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天時不如地利)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地利不如人和). 4차 산업혁명의 시기가 도래했고(天時), 대전의 입지가 아무리 유리해도(地利) 결국 사람(人和)이 성과를 만들어 낸다. 치밀한 밑그림과 유기적인 전략수립이 절실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대전시민의 의식과 문화수준이 4차 산업혁명을 수용할 정도로 향상됐을 때 비로소 값진 성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70년 역사를 넘어 새로운 백년을 바라보는 대전시민의 역량으로 얼마든지 달성가능한 목표다. 孟子가 오늘의 대전을 보면 이렇게 말해야 한다. 天時地利不如大田之人和(천시와 지리도 대전시민의 합심만은 못하다) 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