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윤 배재대학교 주시경교양대학 교수

상앙은 법가의 계통을 이은 전국시대 진나라의 정치가다. 10년 이상 재상의 지위에 있으면서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자, 진나라 사람들이 그를 시기하고 원망했다.

하루는 현사(賢士)인 조양이 찾아와 상앙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진나라의 많은 악습을 뜯어고친 훌륭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남의 말은 모두 그르다 하며 오직 자신만이 잘났다고 스스로 교만해 하니, 바라건대 제가 오늘 그대에게 하루 종일 직언을 해도 죽임을 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 이에 상앙이 "꾸며낸 말(貌言)은 화려하지만 실속이 없으며, 진실된 말(至言)은 아름답진 않지만 실속이 있다. 듣기 싫은 말은 약이 되지만, 달콤한 속삭임은 병이 된다"고 답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직언을 해 주는 것은 약이 되므로, 조양을 스승으로 섬기겠다고 했다. ‘사기’ <상군열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보통 혼자 하는 말을 언(言)이라고 한다. 반면 상대와 주고받는 말이 어(語)가 되고, 자기의 생각을 담아서 말하면 설(說)이 된다. 여기에 불특정 다수에게 말하는 담(談)과 말하기 기술인 화(話)도 있다. 소통을 전제로 말의 홍수를 이루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제각기 부유(浮遊)하는 말들 속에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며, 하고 싶은 말만 떠들어댄다. 중요한 것은 말은 점점 많아지는 세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대는 갈수록 불통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제각각 자신들의 말만 떠들어대는 소리 없는 아우성(?)만 가득할 뿐이다. 말과 소통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실인 것이다.

말은 입에서만 나오는 말이 있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이 있다. 전자는 듣기만 좋게 꾸민 말이고, 후자는 진심이 담긴 담백한 말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진실한 말은 듣기에 좋지 않고, 듣기에 좋은 말은 진실하지 않다"고 했으며, 이어서 "선한 사람은 말이 많지 않으며, 말이 많은 사람은 선하지 않다"고 했다. 말이 주는 가치는 많이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절제하고 아끼는 것에 있다.

인색한 것이 미덕일 리 없지만, 말에서만은 예외이기도 하다. 말은 조금 부족해도 좋다. 많으면 많을수록 손해인 '다다익손(多多益損)'인 것이다. 침묵은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줄여서 하고 싶은 대로 다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말은 많을수록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아낄수록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말을 적게 삼가서 하는 것이 근심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우리가 하는 말에 표정이 있다면 어떤 표정일지, 소리가 있다면 어떤 소리를 낼지 궁금하다. 서로 밝고 환한 표정으로 웃으며 즐겁게 소통하고 있을지 의문이 드는 세상이다. 동서고금에 설화(舌禍)로 인생을 망친 사람은 무수히 많지만, 상대방의 말을 경청(敬聽)해서 해를 입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말을 배우는 것은 3년이면 충분하지만,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30년이 지나도 부족하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이청득심(以聽得心)하는 인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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