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수 ETRI 기술상용화센터장

데이터 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다. 혹자는 인류가 지금까지 생산해낸 데이터양 보다 최근 1~2년 사이 생성된 데이터가 더 많다고 한다. 데이터만 늘어난 게 아니다. 사람들 간의 교류도 지난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확대됐다. 기껏해야 가족이나 지인 몇몇 정도에 불과했었는데 이제는 나라 안팎을 넘나들며 수많은 사람과 실시간으로 소통한다.

이렇게 데이터도 늘어나고 사람들과 교류도 활발해 지면, 정보도 풍성해서 좋고 서로 간 이해와 공감의 폭도 넓어져 ‘살기 좋은 지구촌’이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지금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바로는 전 세계 곳곳에서 갈등의 골은 오히려 더 깊어져만 가고, 이슈마다 극한의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서로 간에 타협점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당장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왜 이렇게 돼버린 것일까?

네트워크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 중에 잠금효과(lock-in effect)가 있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기존의 제품을 사용하던 소비자가 더 좋은 신제품이 나오더라도 계속해서 기존 재화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 사용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아래아 한글’이라는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순히 ‘아래아 한글’이 사용하는 데 편해서라기보다는 내가 소통해야 하는 집단이 모두 ‘아래아 한글’로 된 문서를 사용하고 있어 설령 더 좋은 워드프로세서가 나타나더라도 그것을 쉽게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회 현상에서도 어쩌면 이러한 잠금 효과가 반영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즉 내가 속하지 않은 다른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제기되는 의견이 더 합리적이라 하더라도 나는 내가 속한 네트워크에서 주장하는 의견을 고수하기 쉽다.

정보들도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정보들을 접하기보다는 네트워크 내에서 회자 되는 정보에 더 의존한다.

정보의 편식은 가속화되고 집단 내 정보 편향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내가 다양한 정보를 취합해 네트워크 내에서 주로 제기되는 의견과 다른 형태의 독자적 의견이라도 제시하는 날에는 나는 네트워크 내에서 수많은 비난을 감수해야 하거나 극단적으로 제명(?)당하는 것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실제로도 현실에서 자주 목격하는 일들이다. 두려움을 가지는 것이 더 이상 이상하지 않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저서를 통해 “인간은 본인이 말하는 의견조차도 일종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소유물로 인식한다”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의견을 철회하는 것은 자신의 가치 일부를 포기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이치를 살펴 가며 의견을 쉽게 변경하기 어렵게 됐다고 했다.

가뜩이나 그러할진대, 네트워크조차도 본인의 소유물로 인식돼버린다면 아무리 주관이 분명하다 하더라도 다른 의견을 내는 순간 한 개인은 집단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부정당하게 되는 꼴이 돼져 이를 감수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이제라도 네트워크의 확산에 따른 문제점을 인식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특별히 온라인 공간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네트워크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리이다.

그리고 온라인 공간은 상당 부분 기술적 응용에 크게 영향받는다. 따라서 기술개발자들은 온라인 공간을 디자인할 때 네트워크의 사회적 위협요인이 최소화되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심도 깊게 고민해야 한다.

에리히 프롬의 주장을 빌리자면 개개인이 네트워크 내에 존재하면서도 소유보다는 존재로서의 가치를 경험하며 삶의 희열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인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좀 더 다양하고 공존 가능하며 느슨한 네트워크를 개발해 구축 운영해 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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