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무수동에 담긴 효 이야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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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무수동에 담긴 효 이야기 속으로
  • 노진호 기자
  • 승인 2019년 10월 10일 18시 09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0월 11일 금요일
  •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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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문화 신문>
안동 권씨 종가 효문화 깃든 ‘무수동’
영조 때 호조판서 지낸 권이진 선생 ‘유회당’ 지어
부모 묘 관리하며 유학교육도… 깊은 효심 느껴져
거업재·여경암·산신당… 유·불·선 삼교합일 ‘특색’
▲ 유회당으로 향하는 무수동 마을 어귀. 안형준 기자
▲ 안동 권씨 종가 사랑채. 안형준 기자
▲ 유회당 입구. 안형준 기자
▲ 유회당 연못 활수담. 안형준 기자
▲ 사당(왼쪽)과 삼근정사. 안형준 기자
▲ 거업재. 안형준 기자

효(孝)를 실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겠지만 부모님께 걱정 끼쳐 드리지 않는 것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 효에 대한 마음이 마을 이름 자체에 담겨있는 곳이 바로 '없을 무(無), 근심 수(愁)'의 무수동이다. 대전 도심 속 평화로운 시골마을이자 안동 권씨(安東 權氏) 종가의 효문화가 깃든 전통마을인 '무수동'을 찾은 것은 아직 추석 연휴 기분이 남아있던 지난 9월 20일이었다. 이번 탐방은 한국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사업단 김덕균 단장과 함께 했다.

'무수동'에 들어가기 전 그 유래에 대해 먼저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유회당 권이진의 조부 권시(1604~1672년)는 인천 외가에서 출생 후 동춘당 송준길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이다. 그는 1680년 경신환국(庚申換局)으로 정치가 혼란스러워지자 대전 탄방동으로 이사 왔다가 수철리 산곡(水鐵里 山谷)에 은거했다. 은거생활 후 세상의 근심이 없어져 이곳을 무수리(無愁里)라 했고, 지금의 무수동이 됐다.

무수동에서 처음 만난 곳은 안동 권씨 종가였다. '종가(宗家)'는 그 집안과 마을의 전통을 오롯이 보존하는 박물관 같은 곳이다. 이 같은 의미의 종가에 가장 먼저 들르게 되니 마치 무수동 안내소를 찾은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안동 권씨 종가는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88년 후손들이 현재 자리에 옮겨지었다. 보문산 남쪽을 배경으로 한 이 가옥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산과 내를 벗함으로써 참된 선비의 경지를 이루겠다는 생활철학이 담긴 것이다. 안동 권씨 종가는 낮은 잡석기단 위에 구성한 ㄱ자형 안채, 남편의 활동공간인 사랑채, 집터 내 가장 좋은 자리에 배치된 사당, 자연공간과 어울린 정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종가를 둘러보던 김덕균 단장은 "문 밖의 연못과 정자 등을 보면 종가의 옛 규모는 지금보다 훨씬 더 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사각형태의 연못은 땅을 상징하고 (이곳에는 없지만) 보통 연못 중앙에 둥근 섬을 만드는데 그것은 하늘을 상징한다"고 부연했다.

안동 권씨 종가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던 김 단장은 우리에게 재미있는 질문을 던졌다. '생활공간에 마저 부부유별(夫婦有別)을 담은 조선 사회이지만, 자식이 없는 것이 칠거지악(七去之惡)에 들어갈 정도로 다산을 중요하게 여겼다. 조금은 아이러니할 수도 있는 두 가지 가치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 해답의 힌트는 건물 뒤편 '툇마루'였다. 남녀의 생활공간은 분리하지만, '소통을 위한 장치(?)'도 마련해 놓는다는 것이다. 명문가의 무게감과 조금은 므흣(?)한 이야기를 뒤로 하고 우리는 다음 코스인 '유회당(有懷堂·대전시 유형문화재 제6호)'으로 향했다.

'유회당'은 조선 영조 때 호조판서를 지낸 권이진(1668~1734년) 공이 부모의 묘를 관리하면서 교육을 하기 위해 1714년 지은 건물이다. '유회'란 말 자체가 부모를 간절히 생각하는 효성스러운 마음을 품고 싶다는 뜻이다. 권이진 공의 자는 자정(子定), 호는 유회당으로 송시열 선생의 외손자이다. 그는 효심이 매우 깊은 사람이었다. 영조(1728년) 때 호조판서로 재직하면서 부모님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자 무수동과 유회당의 모습을 8폭의 병풍에 담아 집무실에 두고 보았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아쉽게도 이 '무수동도(無愁洞圖·대전시 유형문화재 제44호)'는 현재 7폭만 남아 있다.

유회당에는 오래된 나무와 돌, 연못이 어우러져 있는 정원이 있다. '유회당집’ 하거원기(何去園記)에는 ‘정해년(1707년) 이 땅을 정하고, 계사년(1713년) 계림에서 돌아와 납오지(納汚池)를 파고 단풍과 철쭉을 심었다. 을사년(17256년) 경상도 관찰사를 그만두고 돌아와서는 크게 수리했고, 지금 정해년(1727년)에 이르러서야 경색(景色)을 갖추게 됐다’고 기록돼 있다.

하거원기 기록에서도 볼 수 있듯 유회당 연못의 원래 이름은 '납오지'였지만, 지금은 '활수담(活水潭)'이란 돌비석이 세워져 있다. 한국효문화진흥원이 발간한 효문화 자료보감에 따르면 현 활수담이란 이름은 산 너머에 있는 거업재(居業齋) 앞에 있었고, 납오지 역시 현재 유회당 앞 주차장 자리였다고 한다. 지금 세워져 있는 활수담 비문은 1960년대 안동 권씨 종친회에서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연못 위 돌다리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후손들에 대한 교육 공간인 유회당이 나온다. 부모님 묘소와 교육 공간을 같은 곳에 마련한 것은 모든 교육의 근본이 효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유회당 바로 옆에는 장판각(藏板閣)과 기궁재(奇窮齋)가 있다. 장판각은 지금의 도서관 같은 곳이다. 김덕균 단장은 "장판각은 안동 권씨 집안의 저력과 함께 조선 식자층의 장점을 보여주는 곳"이라며 "후손에게 황금보다 책을 물려주라고 권한 우리 조상들의 문화와 정신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기궁재는 유회당 등을 관리하기 위한 재실 건물로 묘제를 지낼 때나 종회 등에 사용된다. 집 이름을 기궁재라 한 것은 '논어' 위령공의 '군자고궁(君子固窮)'을 염두에 둔 것이다. 군자고궁이란 군자는 힘든 일을 겪으면서도 마음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자신을 추스르며 더 강하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유회당을 나온 우리 일행은 산 너머에 있는 거업재(居業齋)와 여경암(餘慶菴), 산신당(山神堂)을 다음 코스로 정했다. 하지만 출발 전 김 단장은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한 후 유회당 정문에서 풍경을 한 번 보라고 했다. 탁 트인 시야에 마음이 시원해지면서도 뭔가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화장실이었다.

김 단장은 "방문객 편의를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이지만 그 위치는 아쉬움이 크다. 문화재 보존에 대해 더 고민하고 만들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TV 드라마나 영화 등 유회당 촬영에 대한 문의는 많았지만, 고속도로가 너무 가까워 시끄럽다는 이유로 번번이 무산됐다"며 "행정기관의 문화재에 대한 배려(소음방지벽 등)가 조금만 더 있었다면 무수동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단장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다음 코스인 거업재와 여경암, 산신당으로 향했다. 이 세 곳이 중요한 이유는 타 지역에서 보기 힘든 '삼교합일(三敎合一)'의 효문화 자산이기 때문이다.

우선 유교적 공간인 거업재는 거경궁리(居敬窮理·성리학의 학문수양방법)의 공간으로, 성실한 마음으로 성현의 도리를 터득하고 유고의 참된 정신을 공부하며 군자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다.

거업재 뒤편 여경암은 불교적 공간으로 권이진 공이 선인의 묘소를 지키기 위해 지었으며, 나중에 후손과 후학들이 교육 장소로 사용했다. 도교적 공간인 산신당은 내부에 산신탱화가 있다. 특히 이곳은 동쪽에 영주산, 주변에 봉래산과 방장산 등 전설 속 삼신산(三神山)의 품격을 갖추고 있어 영험한 기운이 느껴진다. 김 단장은 보기 드문 '삼교합일의 공간'에 대해 "쉽게 말하자면 부모님을 위해 들 수 있는 모든 보험에 가입한 것"이라며 "효의 방법으로 유·불·도를 총동원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산신당을 끝으로 이날 탐방은 마무리 됐다. 하지만 아직 설명하지 않은 곳이 있는 데 그곳은 바로 유회당 뒤편 사당 옆에 위치한 시묘소인 '삼근정사(三近精舍)'이다. '삼근'의 세 가지에 대한 해석은 조금씩 다른데 '삼근정사중수기'에는 친영(親營), 별묘(別廟), 재실(齋室) 등 제사·생활공간이라고 전한다. 하지만 선친의 묘, 담 옆에 흐르는 물, 그 옆 철쭉 숲 등 자연친화적 효문화를 상징한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김덕균 단장은 "해석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모두 부모님의 흔적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삼근정사는 과거·현재·미래와 하늘·땅·인간이 공존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답이 무엇이냐 보다는 이곳에서 무엇을 얻었느냐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누구나 여행을 꿈꾸는 가을. 대전 속에 숨겨진 명소 '무수동'에서 나에게 소중한 세 가지를 찾아봤으면 좋겠다. <한국효문화 자료보감 참조>

노진호 기자 windlake@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