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용 대덕e로움 유통활성화운동본부장

가을이다. 한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 흘린 농부들의 피땀을 먹고, 손톱 밑 흙에서 희망처럼 곡식이 자라듯 가을은 그렇게 다가왔다. 가을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기에 숭고하다. 장석주 시인은 ‘대추 한 알’이라는 시에서 가을을 대추에 빗대어 이렇게 노래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고 모든 태풍과 어려움을 이겨낸 뒤의 풍경들은 더 아름답게 다가온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다.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지역화폐 대덕e로움 또한 그렇다. 대덕e로움은 대덕구가 지역경제를 살리고 공동체를 강화하기 위해 지난 7월 출시한 지역화폐다. 지역화폐는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해 관할 행정구역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기에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화폐와 구별된다. 대덕e로움은 출시 두 달 반 만에 발행 목표액 100억원을 초과 달성했다. 인구 146만명의 광주시가 4개월 만에 100억원을 달성한 것과 비교하면, 인구 18만명이 채 되지 않는 대덕구가 발행한 대덕e로움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대덕e로움은 지역경제에 파란을 일으킬 새로운 경제모델을 찾는데서 출발했다. 주민과 자치단체가 힘을 모아 촘촘하게 기본계획을 수립해 착실히 실행에 옮겼고 주민 주도의 지역화폐 발행위원회를 구성했다. 주민 대표 344명으로 구성된 유통활성화 운동본부를 발족했으며 350명으로 구성된 통장홍보단과 소상공인·대학생·청소년 등 계층별 홍보단도 출범시켰다. 60개가 넘는 기업·단체와 유통활성화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출시 3개월 전부터 주민과 공무원들은 대덕e로움을 알리기 위해 오뉴월 땡볕도 마다않고 거리홍보를 펼쳤다. 주민들이 먼저 대덕e로움 사용법을 익히고 내 가족, 내 이웃에게 홍보하는 마케터를 자처했다. 이렇듯 대덕e로움은 주민과 공무원들이 공들여 키운 귀한 자식이다.

대전은 행정과 경제의 축이 원도심에서 신도심으로 옮겨가며 자치구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고착화 돼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대전시가 내년 7월, 2500억원 규모의 지역화폐를 발행한다고 한다. 행정안전부는 지역화폐 사용의 지역 내 쏠림현상을 우려해 광역단체 발행보다는 기초단체에서 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대부분의 광역자치단체도 직접 발행보다는 기초자치단체 발행을 지원하면서 지역경제를 컨트롤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역화폐는 지역자금의 역외유출을 방지해 소비-생산-일자리 증가의 선순환경제를 지역 내에 구축하는 것이 첫째 목표이다. 2018년 한국산업연구원이 발표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대전시는 지역자금의 역외 유출보다 유입이 더 많다. 현재 인천시와 울산시에서 지역화폐를 직접 발행하고 있지만, 이들 도시는 지역자금의 역외 유출이 유입보다 많은 도시다. 인천시는 다수의 기초자치단체가 발행할 경우 광역 차원의 발행은 폐지할 계획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전시가 나 홀로 역주행 하겠다고 하니 걱정과 우려의 마음이 가득하다. 구체적인 계획과 어떠한 검토도, 미래 청사진도 없이 무턱대고 하겠다는 것은 재고(再考)돼야 한다. 지역경제를 살리는 일은 지역발전을 염원하는 주민의 힘이 모아져야 가능하다.

그 동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수많은 경제정책들이 실패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지역의 성장은 기초에서 시작된다. 각 자치구의 경제성장판이 열려야 대전경제 전체가 성장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불씨를 끄려 해서는 안 된다. 다함께 잘 살아보겠다는 대덕구민의 꿈에 생채기를 내지 말아야 한다.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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