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철 대덕대학교 교수

요즈음 대학에서는 취업시즌이 시작됐다. 그래서 그런지 문득 필자가 첫 직장 면접 볼 때가 떠오른다.

졸업식만 남겨놓고 여기저기 취업자리를 알아보고 있던 시기에 학과사무실에 OO산전 연구소 연구원을 뽑는 추천서가 몇 장 들어왔다는 소리를 들었다. 당시 OO산전 그러면 산업용 로봇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다고 언론에 많이 소개된 그런 회사였다. 평소부터 꼭 가고 싶었던 회사였기에 입사지원서를 냈다.

한 보름쯤 후에 면접 날짜가 잡혔다고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당일 길이 익숙하지 않아 물어물어 어렵게 면접장소로 찾아갔다. 그리고 면접 대기실의 문을 여는 순간 그곳에는 같은 또래의 지원자 200여명 정도가 모두 말끔하게 양복을 빼입고는 긴장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면접대기실에서 2시간 정도를 기다리고 있자니, "정기철 씨" 호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옷매무시를 고쳐 입고 면접실로 들어갔다. 7명의 면접관 앞에는 의자 5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필자 이름이 맨 마지막으로 호명되어 끝자리에 앉았다.

면접 위원들은 오랜 면접 탓인지 몹시 피곤해 보였다. 우리가 앞에 앉자 가운데 앉아 있던 분이(후에 알았지만 이분이 당시 OO산전의 사장님이셨다) 맨 왼쪽 첫번째 지원자한테 물었다. "김ㅇㅇ 씨는 우리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어디에서 근무하고 싶습니까?" 그 친구가 대답했다. "저는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싶습니다." 다른 면접위원이 질문했다. "연구소 아닌 다른 부서는 어때요?" 그 친구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저는 연구소 아니면 오지 않겠습니다." 끝쪽에 앉아 있던 머리가 희끗한 다른 면접 위원이 혀를 차며 한마디 했다. "이거 큰일이네 오늘 면접자들은 모두 연구소 아니면 입사를 하지 않는다고 하니. 허참!"

두 번째 지원자에게도 질문이 갔다. "이ㅇㅇ 씨도 연구소 아니면 안됩니까?" 그러자 그 친구도 "저도 연구소 아니면 입사할 생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가운데 앉아 있던 사장님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나머지 분들도 모두 같은 생각입니까?" 필자 옆에 있던 나머지 두 명의 친구도 "네 그렇습니다." 하고 똑같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 순간 필자는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큰소리로 씩씩하게 말했다.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연구원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회사가 원하는 곳이면 어느부서 어느곳에서도 열심히 일할 자신이 있습니다." 지루한 듯 면접을 보던 면접 위원들이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모두 필자를 쳐다보았다. 면접위원 중 또 다른 한분이 물었다. "그럼 정기철 씨는 지방에서도 근무 하실 수 있습니까?" 필자는 대답했다. "네 물론입니다."

이번에는 가운데 계신 사장님께서 다시 물어왔다. "그럼 영업직도 할 수 있습니까?" 필자는 또다시 대답했다. "네 물론입니다. 저는 영업은 물론 공장에서 생산도 할 수 있습니다." 필자 말이 끝나자마자 사장님께서는 갑자기 큰소리로 껄껄껄 웃으시며 주변 면접위원들을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그래! 맞아! 우리 회사는 저런 젊은이를 필요로 하는거야. 저런 젊은이가 있어야 우리 회사가 발전할 수 있어. 저런 젊은이가 우리가 원하는 인재상이야!"

그 자리에 있던 면접위원들 모두 사장님 말에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필자 옆에서 함께 면접을 보던 친구들이 당황한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맨 왼쪽에 있던 친구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저도 영업도 생산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앞에 앉아 있던 사장님은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띄우며 말씀하셨다. "그래? 자네도 생각이 바뀠나 보지?" 하여간 그날의 면접은 그렇게 끝이 났다. 후일 회사에 최종입사가 결정되어서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에 가보니 그래도 나중에 생각을 바꾼 김 ㅇㅇ 씨와 필자만이 합격되어 있었고, 나머지 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여간 그렇게 나는 OO산전 공채로 근무하고 싶었던 산업용 로봇 연구소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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