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

미술관은 문화기억으로, 지식과 예술의 보고(寶庫)다. 인간의 뇌는 기억이라는 놀라운 기능을 가진다. 인간은 지나간 일들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문화기억은 각자가 살아가는 사회의 기억을 기록한 유무형의 문화자산이다. 예술가는 생각과 감정을 눈에 보이는 시각예술로 표현해 찰나를 영원으로 기억하게 한다.

미술관은 유형의 시각예술을 문화기억으로 체계적으로 보관하고 전승하기 위한 문화제도다.

동아시아는 문화기억을 위해 왕실도서와 미술품을 보관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중국 송나라는 왕실미술품을 기록한 선화화보(宣和畵譜)를 출간해 미술품의 수집과 보관 뿐만아니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문화사의 기초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했다. 청나라 황실미술품은 중국과 대만의 고궁박물원으로 분산해 보관되면서, 청나라는 사라졌지만 청나라 황실미술품은 문화기억을 오늘날에 생생히 전해준다.

조선시대 왕실소장품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장서각으로 분산돼 보관되고 있다.

오늘날 조선시대 왕실소장품을 문화재로 인식하지만, 조선시대 당시는 동시대미술을 수집·연구·보존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현대미술을 수집, 연구, 보관한다는 것은 수 백 년이 흐른 뒤에 문화기억을 만들어 간다는 중요한 임무라는 것을 강렬하게 인식하게 한다.

특히 규장각은 조선시대의 동시대 미술품을 수집, 연구, 보관한 제도로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조는 지식과 문화로 국가의 부흥을 도모했다. 영조의 글을 봉안하기 위해 즉위한 해인 1776년에 창덕궁 후원의 규장각 전경을 화가 김홍도에게 그리게 한다. 정조는 뛰어난 젊은 문신들을 연구에 몰입하게 함으로써 규장각을 중추적인 학술기관으로 성장시켰다.

규장각은 학술 연구뿐만 아니라 왕실을 위한 그림을 제작하고 보관했다. 예를 들어 ‘승정원일기’를 읽어보면, 왕실은 ‘농상도’ 혹은 ‘빈풍7월의’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승정원일기’는 ‘민간의 병폐와 고통을 모름지기 어린 나이부터 일찍 알아야 합니다.

세자는 지금 어린 나이니, 붉고 푸른 고운 빛깔만으로 그저 즐기며 좋아하는 물건으로 여기게 된다면 전하께서 그려서 준 본뜻이 아닙니다.

그림을 보고 농사의 어려움을 알도록 세자에게 삼가 권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기록한다. 미술작품은 단순한 감상을 넘어서, 규장각의 미술정책은 조선시대의 문화가치를 표현한 문화기억이다.

전세계의 박물관, 미술관이 모여서 수립한 세계뮤지움협회(ICOM)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2007년 22회 총회에서 ‘뮤지엄은 사회와 그 발전을 위해 대중에게 열려 있는 영구적인 비영리기관으로 인류의 유무형 문화를 수집, 보존, 연구, 소통, 전시하며, 교육, 연구, 향유를 위한 환경이다’라고 정의했다.

ICOM 특별위원회는 한걸음 더 나아가 2019년 총회에서 뮤지움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발표하고 동의를 구하고 있다.

오늘날 미술관의 역할과 기능을 고려함에 있어서 뮤지엄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공유하고자 한다.

‘뮤지움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비판적 대화를 위한 포용적이고 화합을 이루는 공간을 민주화한다. 현재의 갈등과 도전을 인지하고 표명하면서, 미술관은 사회를 위하 신뢰할만한 예술품과 표본을 보유하며, 미래세대를 위한 다양한 기억을 보호하고, 모든 사람을 위해 문화재에 대한 동등한 권리와 동등한 접근을 보장한다. 뮤지엄은 영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뮤지움은 참여적이고 투명하다. 인류의 존엄, 사회적 정의, 세계적 평등과 지구의 안녕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수집, 보존, 연구, 해석, 전시하기 위해 다양한 커뮤니티과 함께, 그리고 커뮤니티를 위한 활발한 활동을 수행해, 세계에 대한 이해를 강화한다.’

역시 우리가 지향해야할 미술관은 이 시대에 인류의 문화기억을 위해 끊임없이 진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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