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웃게하는 의사 건양대병원 내분비내과 박근용 교수
불통시 진료거부권 불사 의지
“말로 끝내고 방관하면 직무유기”
배우자 치료 보조 역할 등 당부
마음의 병이 9할… 삶의 처방전도

▲ 건양대병원 내분비내과 박근용 교수가 자신의 의료 철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건양대병원 제공

[충청투데이 김일순 기자] 진료실에서 의사와 환자가 마주 앉았다. 의사가 묻는다. “담배 피우시나요?”, “네”, “그럼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주시겠어요” 환자는 의사의 말을 순순히 따른다. 의사가 환자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갑자기 담배와 라이터를 집더니 곧바로 쓰레기통에 버린다.

깜짝 놀란 환자에게 의사가 정중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얘기한다. “담배는 환자분에게는 독입니다. 당장 끊으세요. 만약 다음 진료 때 담배를 피우고 오신다면 제가 진료를 거부할 겁니다. 저에게도 진료 거부권이 있습니다. 이건 환자분을 위한 겁니다.”

의료기술은 기본이고 친절과 서비스를 더 해 환자를 대해도 살아남기 힘들 만큼 의료환경이 급변하고 의료시장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진료실에서 ‘겁박’ 수준의 멘트를 거침없이 날리는 강심장 의사가 있다. 그 주인공은 건양대병원 내분비내과 박근용 교수다

얼핏 상식선에서 보면 ‘이 의사를 찾는 환자는 많지 않겠구나’ 할 수 있겠지만, 그건 기우다. 늘 밀려드는 환자로 조금이라도 대기시간을 줄이고 진료시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 진료실에 별도의 마이크까지 설치, 의사가 직접 환자를 호명해 진료실로 부를 정도다. 더구나 한 번 진료실에서 인연을 맺으면 오랜 기간 꾸준히 치료를 받는 오랜 환자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그래서 인터뷰를 요청해 진료실에서 박 교수를 만났다. 먼저 담배 얘기부터 물었다.

“처음엔 저도 담배를 끊어보시라고 적당히 달래봤지요. 그런데 잘 안 되더라고요. 당뇨병이나 고혈압 환자에게는 명백한 독인데. 그냥 둘 수 있나요. 그래서 내 방식대로 강하게 밀고 나갔습니다.”

박 교수는 “제가 처방한 대로, 제가 시키는 대로 잘 준수하는 환자분들도 많아 관리가 쉽지 않은데, 제 말을 따르지 않는 환자들까지 신경 쓸 수는 없다”며 진료 거부권을 내세운 ‘협박 아닌 협박’에 대부분의 환자는 수긍하고 잘 따라온다고 한다.

실제 박 교수의 진료 테이블에는 환자들로부터 ‘압수 아닌 압수’를 한 라이터와 전자담배가 놓여있었다. 쓰레기통에는 환자 주머니에서 방금 나온 듯한 담배가 두 갑 들어있었다. “담배만 뺏고 라이터는 내버려 두면 담배를 다시 피울 것 같아 아예 라이터까지 압수합니다. 애초에 문제가 될 것은 다 수거하는 셈이죠. 물론 버릴 때 분리수거는 철저하게 지킵니다(웃음).” 전자담배라고 예외는 없다. 고가이기는 하지만 농축된 니코틴을 환자에게 마시게 할 수 없어 반강제적으로 압수한다고 한다.

“물론 환자 중에서는 ‘의사가 왜 남의 담배를 빼앗아가느냐’며 반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의사 입장에서 환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그냥 둔다면 그건 일종의 직무유기죠.”

만약에 기자가 담배를 피우는 환자로 박 교수에게 담배를 압수당했다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잠시 생각해봤다. 나쁘지 않았을 것 같았다. ‘의사가 어떻게든지 치료를 하기 위해 강한 톤으로 몰아붙이는구나’하는 진정성이 오롯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환자 치료에서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것이 의사와 환자 간 ‘라포(Rapport) 형성’이다. 라포는 상호 친밀한 관계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등 서로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이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상담심리학이나 치료 분야에서 변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으로 꼽는다.

“사실 우리에게 오는 병들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 많습니다. 마음에서 오는 것이 90%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마음을 잘 다스리고 마음이 즐겁다면 병에 잘 걸리지도 않고, 설사 몸이 아프더라도 치료과 쉽게 이뤄집니다.” 박 교수는 진료과정에서 환자들이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지, 그 근본 원인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걸 먼저 찾아내 해결해주는 것이 치료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이면서 상담사 역할도 동시에 수행한다. “대개 남성은 스트레스 원인이 직장생활이나 친구들, 술과 관련된 것이 많고, 여성은 남편과의 트러블이 가장 많습니다. 이어 두 번째가 자식이고요. 요새는 고부간 갈등은 많이 없어졌습니다. 그만큼 세상이 달라진 거죠.”

그래서 당뇨병이나 갑상선 질환 등을 앓고 있는 중년층 이상의 여성 환자에게는 남편과의 진료실 동행을 요구한다. 그러면 남편들은 대부분은 처음엔 거부했다가 지속된 재촉에 어쩔 수 없이 부인에게 이끌려 진료실을 찾는다고 한다.

‘지은 죄가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 박 교수의 해석이다. 박 교수는 부인을 따라 진료실에 온 남편에게는 간곡한 충고를 곁들인 실생활 처방을 내린다.

“그동안 남편분이 힘들게 했으니 부인분이 이렇게 아픈 것 아닙니까. 부인분이 힘들면 남편분이 오히려 더 힘들어집니다. 나이가 들수록 여성은 남성없이도 살 수 없지만, 남성은 쉽지 않잖아요. 이제부터 치료보조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제가 몇가지 당부한 내용 반드시 집에서 실행해야 합니다.”

박 교수가 먼저 ‘저도 집에 가면 집사람에게는 노예처럼 삽니다. 남편분도 그렇게 살아야 해요’라고 분위기를 잡으며 진정성을 가득 담은 처방전을 내면 남편들의 이행률이 높다고 한다. 그러면 남편이 부인이 기름진 음식을 먹으려고 하면 중단시키고, 잠깐 누우려고 하면 나가서 운동하라고 재촉하는 등 간섭이 심해진다고 한다. 전에는 부인이 음식조절이 핵심인 당뇨병을 앓고 있어도 별다른 간섭이 없다가 병원에 다녀온 이후 이래라저래라 요구조건이 많아지면 부부간 다툼도 생기는 경우도 있다.

박 교수는 이런 부부싸움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실제로는 애정싸움으로 치료효과가 눈에 띄게 좋아지는 신호로 본다.

“사실 당뇨병은 가족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치료가 쉽지 않습니다. 먹는 것과의 싸움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다른 가족들의 교육과 훈련이 중요합니다. 환자에게만 백날 얘기해봐야 소용없습니다. 특히 배우자의 치료보조 역할이 큰 역할을 담당합니다.”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는 게 체질인 천상 의사로 늘 활기찬 박 교수도 가끔 기운이 처지는 경우도 있다.

진심을 다해 전력으로 치료를 했는데 엉뚱한 방향으로 문제제기가 들어올 때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은 앞뒤 정황과 상황을 고려해 큰 문제없이 지나가지만 그럴 때마다 의욕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적정선에서 적당히 진료를 하다보면 대기실에서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을 보면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된다고 한다.

“저를 믿고 늘 찾아오시는 환자분들의 눈빛을 보면 나쁜 감정도 가라앉고 사라졌던 의욕이 다시 돌아옵니다. 미안한 마음도 생기고요. 그러면서 열정이 다시 회복됩니다.”

박 교수는 환자를 대할 때 늘 가슴에 품고 있는 철칙이 있다.

“내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없어진다면 내 마음이 어떨까요. 무척 괴롭고 슬프고 혼란스러울 겁니다. 내 마음이 그렇다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겠죠. 그래서 환자를 볼 때마다 이 환자가 가족들과 함께 건강하게 오래 살아갈 수 있도록 유지시켜 줘야겠구나. 협박 공갈을 하더라도 최소한 1분 1초라도 더 삶을 연장해서 가족들 품에 더 오래 머물게 하자. 적어도 그 환자가 가족을 떠나더라도 후회스러움은 없게 하자. 이게 내가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업무다. 이걸 안 하면 나는 의사로서 직무유기다.”

김일순 기자 ra115@cctoday.co.kr

의료기술이 상향평준화된 시대. 환자에 대한 친절함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기본이 된 지 오래다. 이제 의사는 환자에게 친절함을 넘어 환자와 어떻게 소통하고 어떤 확고한 믿음을 주는지 여부가 더 중요해졌다. 자신만의 노하우와 열정을 바탕으로 환자와 원활한 소통을 통해 치료효과를 높이는 의사들이 있다. 병원 문을 나서는 환자에게 함박웃음을 안겨주는 의사들을 만나 그 남다른 비결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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