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각 대전시건축사회장

지난주 교육공간관련 회의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며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자리였다. 연배가 거의 동년배였고 관심사도 비슷해 자녀들의 학업에 대해 담소를 나누던 중, 한 위원이 자신의 자녀가 건축학과를 지망한다고 하길래 완강하게 만류했다는 얘기를 하였다. 그 위원도 건축전공자였고 학계에 계시는 분이었기에 현실적인 상황을 빗대어 말씀하신 걸로 이해했지만 건축사로서 영 마음 한 켠에 서운하고 억울한 감정이 가셔지지 않은 채 담겨져 있어 식사하는 내내 불편해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IMF 위기 이후 곤두박질한 설계비는 회복될 기미는 없이 제자리에서 오르내리고 있고 최소한의 물가 상승률은 차지하더라도 기본적인 생존과 관련돼 불편함을 가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건축학과 졸업생의 건축사사무소 지원율이 낮아지는 것은 그들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경제적 처우에 대한 불확실성이 그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전의 우리가 겪었던 도제방식의 업무와 교육으로 미래의 건축사 자격 취득 후의 장밋빛의 경제적인 보상도 이제는 어려워졌다. 지나친 경쟁은 설계의 질을 오히려 떨어뜨렸고, 건축사들의 피땀어린 노력은 허무한 물거품이 되기가 일쑤인 현실이다.

대통령 직속기관인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만들어지고,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이 만들어져도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없는 것은 오랫동안 묵어온 관행, 관습, 현행법에 대한 무시 등 공정한 거래를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조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나 공공기관과의 계약은 불공정한 거래를 깨지 못한 상태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조치가 있어도, 업무대가의 기준을 법으로 명시했어도 개선되거나 지켜지지 않고 오히려 과업지시서와 설계 설명서 등에는 불공정한 요구사항이 나열되고 있다.

공공건축물은 대부분 조달청 시스템을 통해 발주되고 있는데 조달청 자체의 규약과 지침이 우선 개선되어야 함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는 부분이 많다. 또한 조달청 시스템을 이용한 외부 공공기관의 용역은 조달청의 지침조차 지키지 않고 있음에도 수수방관 수준이다.

여러 번 언론을 통해 문제 삼았던 교육청의 설계비 산정은 계획 설계비가 통째로 삭제된 상태로 계속 발주되고 있다.

공정 거래는 공공기관이 앞장서서 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계약으로 시작하게 된다. 이러한 관행은 민간 건축에도 전가되어 더 불공정한 조항과 과업지시서로 설계자를 압박하고 있다. 결국 시대를 상징해야 하는 문화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저질의 건축물들을 양성하는 현실은 건축사 단체의 개별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임을 공감하여야 한다. 도시건축의 발전과 공공건축의 공공성 구현을 지원하는 제대로 된 규칙을 만들고 국민의 혈세가 엉뚱한 곳에서 낭비되지 않는 제도적 방침을 세우는 것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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