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석 충북교육정책연구소 소장

이달 초에 기초학력 논란이 조금 일어났다. 물론 조국 장관 사태로 비롯된 대학 입시 공정성 논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기초학력 향상을 위해 진단평가 도구를 개발, 보급하겠다는 서울교육청 발표는 교육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경기교육청에서는 교육감이 나서 '진단보다 해법'이라며 '서울교육청 방식으로 정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 사이 전교조를 비롯한 진보 쪽 단체들은 강한 반대 의사와 함께 행동에 돌입했다. 주로 학교 서열화, 사교육비 유발 등 폐해를 지적했다.

반면 교총을 위시한 보수 쪽은 올바른 지도를 위해 제대로 된 진단은 필요하다며 찬성 입장을 내보였다.

나름 두 입장이 일리가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진단보다 해법'론에 가깝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진단평가 도구 개발, 보급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라면 교육청이 가만있어도 의회나 언론이 그 결과를 요구할 것이 뻔하다. 그러면 곧장 서열화의 폐해가 드러날 것이다.

둘째, 기초학력 검사, 진단평가 등 무슨 이름으로 불리건 일제고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90년대 후반 초3 진단평가가 도입되는가 싶더니 학업성취도 평가가 들어오고 곧 일제고사 광풍이 전국을 휩쓸었다.

셋째, 이른바 '과학적이고 표준화된 도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지만 실상 살펴보면 몇 과목의 시험지다. 어떤 면에서 폭력적이고 획일적일 수도 있는 잣대로 복잡다기한 학생들의 상황을 다 검사할 수 없다.

넷째, 평가를 위한 비용이 소모적이고 낭비적이다. 평가는 기껏해야 몇 과목의 기초학력이 부족하다는 것밖에 보여주지 못한다. 그 원인도 대책도 제시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단평가는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학교와 교사가 책임을 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관련 정책은 어떻게 추진해야 할까. 진단보다 해법, 지시와 관리보다는 자율과 지원 중심이 옳다.

학습치료가 필요한지 학습보충이 필요한지, 일시적 상태인지 지속적 상태인지, 단순히 학업 부적응인지, 심리 신체적 요인 탓인지, 가정적 배경 때문인지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맞다.

학교 현장에서 학습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을 살펴보면 똑같은 경우가 거의 없다. 다문화, 저소득층, 가족관계 붕괴, 경계선 지능, 미분류 특수교육 대상, 질병, 학교 부적응 등 실로 복잡한 배경과 원인을 가지고 있다. 기초학력과 관련된 이러한 상황과 맥락, 복잡한 현실을 도외시하고 시험지 몇 장 중심의 정책을 펼친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우리교육청은 획일적 진단정책을 버리고 종합적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어 다행이다 싶다. '학습부진 원인별 맞춤형 학습 서비스로 학력 향상', '단위학교 자율성과 책무성 기반 맞춤형 학력 보장'을 목표로 각종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 가지만 소개하면 '충북학습종합 클리닉센터'를 들고 싶다. 이곳에서는 학습부진 요인 분석, 한글해득 수준 진단, 학습자 유형에 따른 방문 학습코칭, 학습치료 지원, 한글 도움자료 개발, 전문 인력 역량 강화 등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학교 현장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길러서 시를 쓴다'는 만해처럼, 기초학력이 부족한 아이를 아파하며 사랑으로 어루만지는 선생님들께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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