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로 느끼기는 어렵지만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었다고 하니 우리사회는 이미 오래 전 이른바 '감성사회'로 진입한 셈이다. 그동안 IMF사태며 이런저런 격랑 속에서 잠시라도 평온함을 누리기 힘들었던 저간의 상황으로 우리가 감성사회의 구성원임을 그다지 체감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감성사회. 간략히 말하자면 종전 '아톰형' 소비자에서 '캔디형' 소비자로 전환된 가운데 여러 징후와 특징으로 볼 때 오래전부터 감성사회는 깊숙이 진행 중이다. 과거에는 품질이 믿을만하고 가격이 저렴하다면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첫 조건을 만족시켰다. 튼튼하고 경제적으로 유리하다 싶으면 망설이지 않았던 아톰형은 어느새 감각적 선택을 앞세우면서 감성의 이끌림에 크게 의존하는 캔디형 소비행태로 바뀌었다. 소비패턴이 크게 변화되면서 감성사회 속으로 깊숙이 달려왔던 것이다.

디자인을 비롯한 감성요소들이 종전의 선택 조건들을 압도하는 가운데 여성이 강력한 독자소비 집단 나아가 거의 모든 소비영역에서 의사결정권을 갖게 되면서 감성상품 소비는 급격히 증가했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대중매체나 인터넷을 통한 트랜드 확산은 전형적인 감성사회의 단초를 보여준다. 특히 SNS의 위세에 힘입은 소위 맛집의 번창은 나날이 위세를 떨치고 있지 않은가. 가족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자신에게 넉넉한 지출을 아끼지 않는 소비의식도 그렇고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구매현상 등 감성사회로 오래 전 진입하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소비를 통한 자기표현 욕구에 적극적인 감성사회 구성원들은 그러므로 감성에 거슬리거나 거북하고 어울리지 않는 형태와 느낌, 기능과 그 운용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감성을 흡족하게 채워주는 사안과 자극에 대하여는 당연시 하면서도 조금이라도 감성의 세밀하고 유유자적한 흐름과 리듬에 거슬리는 경우, 거부반응에 적극적이다.

서울, 대전을 비롯한 대도시 시내버스 출입문에 장착된 체인 형태의 연결고리<사진>는 지금과 같은 감성시대에 생소하고 어울리지 않는 뜨악한 부품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젊은 세대의 경우 (쇠)사슬을 본 적이 별로 없을 터이므로 그 생소함은 증폭된다.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에게 채워졌던 사슬, 노예선에서 노를 젓는 벤허를 묶었던 영상 속 쇠사슬을 떠올리면서 시내버스 문짝에 달린 자극적인 색깔의 사슬 부품은 그래서 더 생경하다. 거북하고 불편하다. 출입문을 여닫을 때 차내 기둥과 연결되는 장치가 필요하다면 다른 형태의 대체품을 찾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디자인을 고안해내는 세련된 '감성'이 이 대목에서 필요해 보인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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