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문화 신문>
한 부모 아래서 태어난 큰 인연
서로 아끼는 형제애… 가슴 뭉클

▲ 문희봉 명예기자
▲ 문희봉 명예기자

세상을 살다보면 힘들 때도, 편안할 때도 만난다. 울고 싶은 날도, 웃는 날도 만난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마저 여의고 네 살 아래 동생을 고아원에 보낸다는 친척들의 말에 형은 일단 집을 나갔다. 친척 아저씨에게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고아원에 맡기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하고 무작정 서울행 열차를 탔다. 서울생활은 녹녹치 않았다. 쓰레기통을 뒤져 썩은 음식으로 연명했다.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공사장 인부, 시장 짐 나르기, 신문·우유 배달, 철공소 인부 등 주로 몸을 쓰는 일이었다. 그의 신발 뒤축에선 삶의 지친 시간들이 볼멘소리를 하며 따라 다녔다.

그의 소원은 빨리 돈을 벌어 동생과 함께 사는 일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동생에게만은 고통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고생 끝에 동생을 고아원에 보내는 일만은 막아졌다. 이제 형의 나이 63세, 동생의 나이 59세다. 지금 육십이면 젊은이 측에 속한다. 그런데 두 형제의 이마에는 고생의 흔적들이 잔잔하게 그려져 있다. 부모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형제애, 동기로 태어났으니 얼마나 큰 인연인가? 그 형의 동생 사랑에 박수를 보낸다. 동생 또한 형을 얼마나 끔찍이 사랑하는지 상상을 초월한다. 자나 깨나 형 생각뿐이다. 부모를 대신해 부모 역할을 해준 형에게 존경의 뜻을 전한다. 형이 보람 있게 보낸 오늘은 어제 세상을 고뇌하던 동생이 그토록 소원하던 내일이었겠다.

요즘 형제의 난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재벌가에서 재산싸움으로 인한 낯 뜨거운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그들에게 1억, 2억원은 껌값일 것이다. 나 같은 서민에게는 천문학적 숫자일 텐데 그들에게는 며칠 용돈에 불과하다. 추기경이나 큰스님처럼 돈과는 무관하게 이름의 향기를 길고 넓게 갖는 경우도 드물다.

동생과의 도타운 형제애가 돋보이는 사연이 오늘 어느 TV의 시니어프로인 '황금연못'에 등장했다. 동생이 형에게 감사하며 감사패를 전달하는 순간, 내 눈에는 작은 웅덩이만한 눈물이 고였다. 한동안 얼싸안고 떨어질 줄 모르는 그들의 모습에서 풍겨주는 형제애는 남다른 것이었다.

존경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는 암담하다. 그런 사람이 많을수록 그 부드러운 성품이 강함을 이기고 정신은 물질을 앞설 것이다. 고전소설을 보면 끝에는 모두 아들 딸 낳아 잘 살았다로 끝나는데 그 형제들의 삶이 그랬으면 좋겠다. 문희봉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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