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에 녹슬어 잊혀진 그곳…예술의 옷입고 핫한 거기로
베테랑 모인 철공문화공동체…거대 로봇 등 볼거리 곳곳에
"사람 모이고…주민들은 행복"

25일 찾은 대전 원동 철공소 특화거리에 기계부품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조형물이 서 있다. 그 옆에서 자재를 옮기고 있는 한 철공소 사장님의 모습. 최윤서 기자
동화극장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벽면에 붙어있는 성인영화 포스터들이 눈길을 끈다. 최윤서 기자

[충청투데이 최윤서 기자] 좁은 골목을 들어서자 비릿한 녹 냄새와 함께 기계 부품으로 만든 거대한 로봇 조형물이 시선을 끈다.

마치 일본의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을 연상시키는 이 조형물은 어느덧 대전 철공소 특화거리의 랜드마크가 됐다. 

바로 옆에는 철근으로 조립된 자동차가 위용을 뽐내며 30년 이상 베테랑 철공 장인들의 숨겨왔던 예술적 감각을 자랑했다.

25일 문화도시 현장 심사를 하루 앞두고 찾아간 ‘역전을 꿈꾸는 동구’의 원동과 인동은 ‘개발’과 ‘보존’의 갈림길에 위태로이 서 있었다.

이곳엔 31개의 철공소가 밀집돼 있는 대전 산업역사의 근간이라고 볼 수 있다. 

짧게는 20년부터 길게는 50년 이상 숙련된 전문가들의 투박하지만 노련한 기술이 모여 철공문화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낙후돼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던 이곳에 최근 한 문화예술단체가 주민들과 함께 예술작업을 시작하며 동네 곳곳 숨겨진 원석들을 보물로 탈바꿈 하고 있다.

대전 최초의 동사무소였던 오래된 창고는 ‘무궁화 갤러리’라는 예쁜 이름을 얻고 철공소 사장님들이 예술혼을 발휘할 수 있는 아기자기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입구 벽면은 사장님들이 하나 둘 씩 붙여 놓고 간 톱니바퀴, 볼트, 엔진 등 각종 오래된 부품들이 예술작품으로써 품위를 지키고 있다.

방치돼 있던 창고를 갤러리로 조성한 대전공공미술연구원의 '무궁화갤러리' 입구. 최윤서 기자
25일 찾은 대전 원동 철공소 특화거리에 철공소 사장님들이 직접 만든 자동차 조형물의 모습. 최윤서 기자

갤러리에 들어서면 LPG가스통을 자르고 붙여 만든 귀여운 캐릭터가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벽면에는 현대판금 김재학 대표부터 덕성기계 장래진 대표까지 원동의 철공장인 10여명이 소개되며 이들이 직접 제작한 주물들이 전시돼 있다.

근처에는 최근 폐가를 리모델링해 철공인·예술가 협업 공간으로 개소한 ‘창조길 대장간: station V4 원동’이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다.

옆 동네 인동으로 넘어가니 1970년대 흑백영화에서나 볼 법한 투박한 간판을 한 ‘동화극장’이 눈에 들어왔다.

성인영화만을 취급해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곳은 대전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며 현재까지도 운영 중이다. 

성인영화 극장인 만큼 화려한 포스터가 붙은 입구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니 할아버지 몇 분이 낡은 쇼파에 앉아 대기하고 계셨다.

과거 대전극장에서 영사기 돌리는 일을 하셨다던 연세가 지긋하신 사장님은 찾아온 기자에게 캔커피를 내주며, 젊은층이 북적였던 옛 시절을 회고했다.  

이날 마침 지하실에 수십 년간 묵혀뒀던 필름, 비디오테이프, 서적 등 또 하나의 역사가 될 소중한 보물들을 전부 꺼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황혜진 대전공공미술연구원 대표는 "문화예술로 사람이 모이고, 원주민들이 행복한 동네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곳 철공소 거리에 대한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최윤서 기자 cys@cctoday.co.kr
 

대전동화극장의 관람자 준수사항. 최윤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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