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예산 멜로 영화로 할리우드에도 진출

▲ [웅빈이엔에스 제공]
▲ [영화사 진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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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 번쯤 좌절한 경험이 있는 분들, 삶에 지친 분들이 보면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영화에요."

23일 종로구 안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최희서(33)는 영화 '아워 바디'(한가람 감독) 속 주인공 자영이 자신과 닮았다고 했다.

자영은 8년째 시험에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행정고시를 준비하던 31살 수험생이다. 그는 2차 시험을 앞둔 어느 날 어두컴컴한 단칸방에 홀로 앉은 초라한 자기 자신과 마주한다. 현실의 암울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자존감마저 집어 삼켜버렸을 때, 우연히 동네를 달리는 또래 현주를 보게 된다. 그의 건강한 몸에 자극받은 자영은 현주를 따라 그날부터 달리기를 시작하고, 조금씩 자신감을 찾아간다.

"저도 배우로 알려지기까지 8년의 무명 생활이 있었어요. 아무도 절 찾아주지 않아 몸과 마음이 빈곤한 삶이었죠. 오디션을 열심히 봐도 안 되고, 운이 따라주지도 않았어요. 나를 뺀 나머지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돈을 벌고 있는데 나만 낙오자가 돼 정체된 것 같고, 또 언제 내 삶이 나아질지 모르는 그런 불안한 시절을 겪었기에 자영의 상태에 공감할 수 있었죠."

2009년 영화 '킹콩을 들다'로 데뷔한 최희서는 힘든 무명 시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영처럼 달리고 또 달렸다.

"오디션에 떨어지면 단편 영화를 만든다거나, 연극을 한다든가 끊임없이 연기를 계속하려고 했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혼자 있으면 제가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뭔가 계속 준비를 했죠."

최희서는 2016년 이준익 감독의 '동주'(2016)에서 일본인 쿠미로 출연해 마침내 존재를 알렸고, 이어 '박열'(2017)에서 일본 여성 가네코 후미코 역을 맡아 차세대 충무로 주자로 떠올랐다. '아워 바디'는 최희서의 첫 단독 주연작이자, 그가 처음으로 맡은 30대 초반 '한국인' 역할이다.

"여성 혼자서 오롯이 끌고 가는 영화가 드문 만큼, 기회가 온다면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섬세하게 큰 변화를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어서 아마 다른 배우들도 탐냈을 거예요."

극 중 자영은 달리기를 통해 조금씩 달라진다. 자신감을 되찾은 것은 물론 몸에는 근육이 붙어 탄력이 넘친다. 몸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최희서도 촬영 한 달 반 전부터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받았고, 한강공원 등에서 하루에 한 시간 반가량을 뛰었다. 달리는 거리도 차츰 늘려 나중에는 한 번에 5㎞씩 달렸다고 한다.

"운동 비결은 없는 것 같아요. 몸은 굉장히 정직하거든요. 안 먹고 운동하면 무조건 살이 빠져요. 지방을 빼려면 먹지 말아야 하고, 근육을 만들려면 운동을 한 뒤 닭가슴살을 먹어야 하죠. 저도 그렇게 한 달 반 동안 지방은 6㎏을 빼고, 근육은 3㎏ 정도 늘렸어요. 그때 습관이 만들어져 요즘에도 일주일에 2~3번 정도는 밖에 나가서 뛰어요."

최희서는 극 후반 밝게 웃는 자영보다 초반에 바깥세상과 단절된 삶을 사는 자영을 연기하는 게 더 힘들었다고 했다. "저는 실제로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인데, 시든 화초처럼 기가 죽은 자영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열심히 연구했죠. 일부러 두꺼운 안경도 꼈어요."

최희서는 최근 좋은 일이 겹쳤다. 오는 26일에는 '아워 바디'가 개봉하고, 28일에는 오랜 연인과 결혼식을 올린다. 조만간 할리우드에도 진출한다. 재미교포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할리우드 저예산 멜로 영화에 주연으로 캐스팅된 것이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등을 만든 유명 제작자 게리 포스터가 제작하는 작품이다. 최희서는 초등학생 시절 5년간은 일본에서, 고교 시절은 미국에서 보내 일어와 영어 모두 유창하다.

최희서는 "어렵게 오디션을 통해 최종 발탁됐다"면서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한국과 미국에서 함께 활동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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