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나 뜻이 가당치도 않은 어휘들도 자주 사용하다 보면 입에 익게 되는가 보다. 특히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되거나 대중매체와 언론 등에서 앞장서서 쓰다보면 어느 사이 표준말 비슷하게 정당한 의미를 지닌 듯한 단어로 자리 잡는다. 위험천만한 현상이지만 사회 감시망과 제재, 거부가 그리 격렬하지 않아 더욱 그러하다.

언어 변형, 외래어 수용 그리고 본래의 뜻에 어긋난 쓰임새, 잘못 사용되는 우리말의 용법에 대해 우리 사회는 대체로 너그러운 편이다. 그래서 외래어 파급력이 거세고 광복 이후 70여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우리말과 글에 남아있는 일본어 잔재는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꽤 오랜 세월 우리 사회는 '군관민(軍官民)'이라는 용어를 별다른 저항이나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엄밀히 보면 공무원에 속하는 군대를 맨 앞에 내세우는 의도를 오랜 군부통치, 군사문화의 유산이거니 간단히 넘길 일이 아닌 듯하다. 다행히 군사정권이 끝나면서 민관군으로 환원되기는 했지만 이런 단어 하나가 사회에 미친 영향이나 국민의식에 침투돼 이뤄진 유·무형의 폐해는 상당하다. 1994년 폐지됐지만 정부 홍보물이었던 '대한뉴스' 등에서 거리낌 없이 외쳐대던 '군관민' 등의 용어는 우리 사회 언어 감각과 그릇된 용어 범람의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 올 추석에도 어김없이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라는 문구가 SNS를 통해 울긋불긋한 그림과 함께 일파만파로 전파됐다. 거리에 나서면 길목 요소요소에 국회의원, 지자체 의원과 단체장, 내년 총선을 겨냥한 예비후보들이 저마다 현수막을 내걸고 주민들에게 풍성한 한가위가 되라고 덕담을 건넸다<사진>. 글을 읽는 '사람'더러 '한가위 명절'이 되라는 요청인데 이즈음 어디 한가위만 되라고 하는가. 아름다운 하루, 즐거운 쇼핑과 여행 등 사람더러 이런저런 추상적인 개념으로 변신하기를 부추기는 그릇된 표현들로 우리말의 오염은 날로 심각해진다. 한가위 즐겁게 쇠세요, 명절 기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하면 될 것을 너나없이 사람더러 한가위가 되라고 하니 대략 난감하다. 다행히 올 추석을 전후로 이런 잘못된 표현에 대한 각성이 확산되고 있어 내년 설에는 올바른 인사를 나눴으면 좋겠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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