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서울대학교 철학박사

성암(醒庵) 이철영(李喆榮) 선생(1867~1919)은 구한말 격동의 시기를 살다간 유학자이며 항일운동가이다. 주요 문헌에는 ‘사상강설(泗上講說)’, ‘항의기사(抗議記事’, ‘내범요람(內範要覽)’ 등이 있으며 문집으로 ‘성암집(醒庵集)’이 전한다.

올해는 대한민국으로서는 매우 뜻 깊은 해이다. 일제에 항거했던 3·1운동 100주년이며, 자주 독립의 열망을 이어 수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이다. 성암 선생은 일제에 대한 결연한 저항으로 옥고를 치르다가 기미년에 서거하셨다. 즉 올해는 성암선생의 서거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성암 선생의 생애와 학문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요한 것은 성암선생의 사상과 철학에서 지금의 우리가 배울 것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성암선생은 무엇보다 철저한 항일운동의 지사이다. 성암이 생존한 1867년에서 1919년까지는 외세의 침입과 열강의 약탈이 자행되던 때로, 특히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의 무도한 침략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때 성암 선생은 철저한 항일의 저항정신을 견지했다. 선생은 "나는 차라리 죽어서 조선의 귀신이 될지언정 살아서 일본 백성이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또한 성암은 "나라가 망했는데도 의거해 복수를 못했지만 너희들의 형벌이 두려워 적국의 호적에 편입되면 임금을 잊어버리고 원수를 섬기는 것이 된다. 이렇게 의리가 없이 구차스럽게 산다면 죽어서 편안한 것만 못하다"고 했다.

이러한 철두철미한 의리정신은 성암의 유학과 성리학의 학문적 깊이에서 발출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숭고한 도덕의 경지이며 이는 세속의 논리와 생존 욕구를 넘어서는 철저한 자기 성찰과 자기 초월의 노력으로부터 획득된 경지라 생각된다. 또한 이러한 도덕적 경지는 바로 성암선생이 호락논쟁을 편향없이 통합하고 조화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요인이라 생각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성암 선생은 유학자이며 성리학자로서 당시 학계의 주요 논쟁이었던 인물성동이논쟁 즉 호락논쟁을 조화롭게 통합했다. 호락논쟁이란 기본적으로 인간과 동물의 본성이 같으냐 다르냐는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철학적 논쟁이었다. 특히 이 논쟁은 단지 학문적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 당파와도 연결돼 매우 복잡하고 민감했다. 성암은 어느 하나의 논리에 편향되지 않고 객관적이고 사심 없는 종합과 통합으로 호론과 낙론의 특징을 사실에 기초해 정리하고 두 이론을 서로 통합할 수 있는 자신의 논리를 제시했다.

이러한 통합과 조화는 단순히 두 주장을 적당히 절충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논쟁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문헌적 사실에 기초하면서 명확하고 합당한 원리에 따라 논쟁 참여자의 논리를 규명했기에 유의미한 것이다. 즉 성암 선생이 편향된 자의식을 초탈해 순수하고 보편적인 시야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새로운 전환의 시기에 직면해 있다. 2018년 남북·북미 정상회담 개최는 냉전의 종식과 평화의 시대의 개막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우리는 성암이 보여줬던 통합과 조화 정신의 역사적 의의와 현실적 함의를 다시 간파하게 된다. 이제까지 한국 사회는 세계적 냉전과 남북분단의 역사적 현실에서 대립과 분열 그리고 반목의 흐름 속에 있었다. 이제는 정반대의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즉 대립과 갈등이 아닌 평화 공존의 시대가 열리고 있으며 또 어떻게든 평화 공존의 새 시대를 열어내야 한다.

바로 이 맥락에서 통합과 조화의 정신과 논리가 요구되고 있다. 이전의 시대와는 전혀 다른 인식과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국가와 국가 간의 국제관계에서의 공존과 평화는 학술적 이론 간의 통합과 조화라는 것과 그 성격이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통합과 조화의 본질적 의미는 학술이론이든 집단 간의 갈등이든 국가 간의 대립이든 그 대상에 상관없이 동일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 통합과 조화는 서로 대립되거나 갈등하는 두 가지 사물을 적당히 절충한 것이 아니라, 각 사물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공평한 상호 대조와 분별을 통해 보편적인 관점에서 서로를 아우르는 이론적 실천적 노력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류가 함께 공존, 공영할 수 있는 평화의 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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