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楚)나라로 가서 출세한 공수반(公輸盤)이 있었다. 그는 자기를 대접하지 않은 고국에 원한을 품어 송나라를 치기로 했다. 그래서 이 사람은 타고난 비상한 재주로 성을 공격하기 위한 전차와 성을 평지처럼 넘어갈 수 있는 구름사다리를 제조했다.

이 소문을 들은 묵자(墨子)가 제(齊)나라에서 초(楚)나라의 도읍인 영에 도착해 공수반(公輸盤)을 찾아갔다. “어떻게 찾아오셨습니까?” 라고 공수반이 묵자에게 묻자 “북방에 나를 모욕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대가 나를 위해 죽여 줄 수 없겠소?” 그러자 공수반은 불쾌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의(義)를 중히 여기니 사람을 죽일 수는 없는 일이요.” “사람 하나 죽이지 않는 것이 '의'라면 왜 죄 없는 송나라 백성을 죽이려 하시오?” 답변에 궁한 공수반은 묵자를 초나라 왕에게 안내했다.

“전하, 새 수레를 소유한 사람이 이웃집 헌 수레를 훔치려 하고 비단옷을 입은 사람이 이웃집 누더기를 훔치려 한다면 전하께서는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도벽이 있어서 그럴 것이오.”

“그러면 사방 5000리 넓은 국토에다 온갖 짐승과 초목까지 풍성한 초나라가 사방 500리 밖에 안 되는 가난한 송나라를 치려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옵니까?” “과인은 단지 공수반의 운제계(雲梯械:성을 공격하는 기계)를 한번 실험해 보려 했을 뿐이오?” “그러시면 외신(外臣)이 여기서 그 운제계에 의한 공격을 막아 보이겠나이다.”

이리하여 초왕 앞에서 기묘한 공방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묵자는 허리띠를 풀어 성 모양(城柵)으로 사려 놓고, 나뭇조각으로 방패(防牌) 대용(代用)의 기계를 만들었다. 공수반은 모형 운제계로 아홉 번 공격했다. 그러나 묵자는 아홉 번 다 성(城)을 굳게 지켜냈다. 그러나 공수반은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묵자만 없애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를 눈치 챈 묵자는

“나를 죽이면 송나라를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것은 큰 착각입니다. 설사 내가 죽더라도 이미 송나라에는 나의 제자 300명이 내가 만든 기계와 똑같은 것을 가지고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본 초왕은 묵자에게 송나라를 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묵자의 이름이 적(翟)이므로 여기서 유래하여 묵적지수(墨翟之守)라 했다.

<국전서예초대작가·청곡서실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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