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윤 배재대 주시경교양대학 교수

제나라 제26대 군주인 경공이 어느 날 술에 취해 의관을 풀어헤친 채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었다. 머리의 관을 벗고 옷도 어지러운 모양을 한 상태로 주변 신하들에게 인자한 사람도 자신처럼 즐길 줄 아는지를 묻자, 인자한 사람도 똑같은 사람인데 어찌 즐기지 않겠느냐며 경공의 비위를 맞춰준다. 기분이 좋아진 경공은 현상(賢相)인 안자를 불러오라 명하고, 안자는 조복(朝服)의 예를 갖추고 임금 앞에 나아갔다. 안자에게도 함께 술을 마시며 즐기기를 청하니, 안자는 힘이 센 사람도 윗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은 예절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경공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한다. 이어서 천자가 예의가 없으면 사직을 지키지 못하고, 제후가 예의가 없으면 나라를 지키지 못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사람에게 예의가 없으면 빨리 죽는다'라는 ‘시경’의 말을 거론하며 예의 중요성을 무섭게 직언했다. 이 말을 들은 제경공은 부끄러운 나머지 바로 조복으로 바꿔 입고 안자에게 예의를 갖추어 술을 권했다고 ‘한시외전’은 전한다.

예의나 예절은 우리말의 예의범절에서 왔으며, 프랑스어 에티켓(etiquette)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이 말은 원래 영어의 티켓(ticket)에 해당하는 말로,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에티켓을 '사교상의 마음가짐이나 몸가짐'이라고도 정의했다. 동서양이 가리키는 말만 다를 뿐이지 모두가 상대에 대한 공손함을 표현하는 의식인 것이다. 이러한 동양과 서양의 정신이 만나 마음과 몸가짐을 경건히 하고 타인을 예의로서 대하면 그것이 바로 '예(禮)티켓'이다. 예의 존재 유무가 인간됨을 규정하는 잣대가 되므로, 예티켓은 한마디로 사람됨을 증명하는 티켓이 되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티켓(?)이 없는 수많은 군상(群像)들과 마주한다. 이들은 동방무례지인(東方無禮之人)으로 예의를 지키는 것에 대한 당위성이나 의무성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천성(賤性)을 여과 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무례함을 넘어서 예의에 어긋나는 비례(非禮), 예의가 빠져 있는 결례(缺禮), 예의를 상실한 실례(失禮)까지 현대판 '사례(四禮)'를 생활화하는 인간이 되고 만다. 바르지 못한 사례(邪禮)로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망치고 있는 것이다.

사회생활은 상대에 대한 존경과 양보의 마음을 갖추고 예를 실천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공자가 말한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는 행동강령과 '예를 모르면 사회에서 존립할 수 없다(不知禮, 無以立也)'는 인간의 기준을 새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의 모든 행동이 예의 테두리 안에서 비롯되어야 하며, 예를 행하는 것은 인간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예를 멀리 하는 사람이라면 인간됨을 증명하는 티켓을 본인 스스로가 팽개쳐버린 셈이다. 공동체 질서와 사회적 규범을 지켜나가기 위한 출발점은 마땅히 서로에 대한 예에서 시작하므로, 우리 모두는 예티켓을 지니고 인간의 길로 나아가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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