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태 대전 서구청장

며칠 전 전통시장에 들렀다. 전통시장에 가면 오감이 즐겁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물건을 고르고, 가격을 흥정하는 장면은 언제 봐도 정겹다.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점 주인의 거친 손마디와 이마의 주름살이 거친 세월을 헤쳐 온 훈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 사는 모습이 이렇구나, 생각한다.

며칠 후면 추석이다. 해마다 찾아오는 명절이지만, 벌써 설렌다. 둥글고 환한 보름달이라도 휘영청 뜨면 어느새 그리운 얼굴이 떠오른다. 삶이 고단해 웃을 일 없던 옛 시절조차 추억으로 다가온다. 속절없이 보름달에 그 얼굴과 그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세월 가는 게 이렇구나, 또 생각한다.

추석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고들 한다. 전통시장 대신 대형마트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추석 성수품을 사고, 역귀성이 늘어 고속도로 정체는 상하행선 구분이 없다. 명절 때마다 해외여행 인파로 붐비는 공항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 됐다. 김영민 서울대 교수가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제하의 글에서 일갈했듯 ‘당신도 과거의 당신이 아니며, 친척도 과거의 친척이 아니며, 가족도 옛날의 가족이 아니며, 추석도 과거의 추석이 아니다.’

변하지 않는 것도 많다. 며칠 전 들렀던 도마큰시장과 한민시장만 가도 변하지 않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팍팍한 살림살이에도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의 표정에는 넉넉함이 가득했다. 야채와 과일을 담아주는 상인들의 표정도 밝았다. 좌판의 송편을 하나 입에 넣으니 맛있는 송편을 맛보는 나보다 상점 주인이 오히려 더 좋아한다. 추석이 일주일 이상 남았으나 그곳에는 이미 한가위 보름달이 떠 있는 듯했다.

연휴가 시작되면 고속도로는 어김없이 막히고,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은 붐빌 것이다. 나들이객도 없진 않겠으나 그래도 대부분은 귀성객들이다. 고향 가는 길에 마주하는 들판에는 황금빛 벼 단풍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 황금 들녘을 지나 고향에 도착해 가족과 나누는 정담은 단연 추석의 백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그냥 생긴 게 아니구나, 생각한다.

우리는 함께 할 때 더 힘이 솟고, 흥이 나는 민족이라고 한다. 그것을 입증하듯 지난여름까지 우리는 안팎의 시련을 함께 헤쳐 왔다. 잠시 휴식의 시간,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 친지와 함께 힘과 흥을 모으는 추석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풍성한 수확을 앞둔 황금 들녘처럼 함께 행복한 도시, 행복동행 서구라는 결실을 볼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뛰고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한가위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 생각이다. 이 다짐을 꼭 이루게 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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