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협 ETRI 광네트워크연구실 책임연구원

며칠 전 딸아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온다면서 영화 관람을 제안했다. 최근 도입된 유연근무제 덕분에 일찍 퇴근할 수 있어 온 가족이 오랜만에 영화 번개를 했다. 함께 본 영화의 제목은 ‘커런트 워’ 였다. 제목만 봐서는 도무지 무슨 영화인지 알 수 없었다. ‘커런트(Current)’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현재’라는 뜻이지만 과학용어로 ‘전류(電流)’라는 뜻도 있다.

영화 스토리는 지금으로 치면 스타 과학자인 토머스 에디슨과 천재지만 주목받지 못한 과학자 니콜라우스 테슬라에 대한 이야기다. 각 개발한 직류송전방식과 교류송전방식을 시카고 세계박람회의 핵심인 빛을 밝히기 위해 필요한 장거리 전기공급 기술로 선정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내용이다. 일반인들에겐 다소 밋밋한 주제일 수 있지만 물리학을 전공하고 광통신을 연구하고 있는 필자에게는 매우 재미있는 영화였다.

산업혁명 이후 미국은 유럽에 비해 원천기술 분야에서 뒤처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에디슨은 백열전구 상용화에 꼭 필요한 장시간 동작하는 필라멘트를 개발에 성공했다. 에디슨은 일약 스타덤에 오른 과학자가 됐으며, 미국이 상용화 기술 개발 분야에서 유럽을 앞설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에디슨은 백열전구의 발명자가 아니지만 효율이 나빠서 사용이 거의 불가능했던 기존 백열등을 12시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고성능 필라멘트를 개발한 과학자이다. 에디슨의 연구결과 덕분에 인류는 어두운 밤을 밝은 낮으로 바꿔 활동 시간을 배로 증가시켰으며 이것이 인류의 역사와 문화에 미친 영향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에디슨은 필라멘트 동작 시간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재료로 1000번 이상 도전했다고 하니, 그 개발 과정은 이루 상상하기 힘들다. 계속된 실패에도 에디슨은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방식을 찾아 계속 도전했기 때문에 결국 성공한 것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았는가?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ETRI의 광네트워크연구실은 5G 시대에 꼭 필요한 초고속 광액세스 인프라 기술인 틱톡(TIC-TOC)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다양한 유·무선 서비스 환경에 맞춰 소프트웨어적으로 광액세스 인프라를 운영하는 기술 또한 개발 중이다. 이 연구성과는 영광스럽게도 올해 ETRI 최고상인 기술대상을 받았다. 틱톡에 필요한 광액세스 기술 연구개발을 하면서 아이디어를 검증하기 위해 실험하는 과정은 즐겁고 행복하지만, 생각만큼 손쉽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생각대로 잘 안되면 ‘세상엔 쉬운 것이 하나도 없다’, ‘쉽게 됐으면 벌써 누군가가 했겠지’라고 스스로 위로를 하지만 위로는 위로일 뿐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성공을 위해서 수십 번 실험을 하다가 ‘한 번만 더 해보자’라는 마음을 먹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실험은 성공한다.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면서 실패를 불렀던 허들들을 하나둘 넘으면서 비로소 성공이라는 결승점에 도착하는게 아닌가 싶다.

최근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서 새삼 ‘과학기술이 국력’이라는 말을 되새겨 본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발전을 위해 설립된 정부출연연구원에서 재직하는 필자는 새삼 어깨의 무거움을 느낀다.

우리 젊은 과학자들이 국가과학기술의 앞날을 밝히는 영원한 필라멘트가 되기 위해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우리 젊은 과학자들의 패기와 이들의 기를 살려줄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과 격려가 필요할 때다. 더불어 우리 사회가 실패와 성공 모두에 인색하지 않고 실패에 관대하며 작은 성공이라도 함께 축하해주고 격려해주는 아름다운 문화가 널리 퍼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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