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각 충북지방병무청장

요즘은 인터넷과 팩스로 대부분의 민원처리가 가능하여 민원인의 방문이 예전만큼 많지는 않은 편이다. 방문민원의 내용은 정책적인 판단이 필요해 신속한 해결이 어려운 경우 등이 대부분이나 간혹 군지원이나 동원훈련연기 등의 간단한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굳이 청사를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방문해 민원을 처리하는 것은 시간적, 경제적 비용이 들고 민원을 처리하는 입장에서도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다. 그런데 서로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제출 서식에 굳이 작성하지 않아도 되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연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인터넷이나 팩스로 처리할 때 느낄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신속과 효율을 강조하는 시대에 맞지 않아 보이는 이 아날로그적 풍경이 소중한 이유는 우리가 하는 일이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귀주이야기’라는 영화가 있다. 중국의 벽촌에서 곧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며 소박하게 살아가던 한 시골 아낙(귀주)이 어느 날 이장에게 폭행을 당한 남편 때문에 마을 공안(경찰)을 찾아가게 된다. 보상금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단지 남편을 가해한 이장의 사과 한마디를 듣고 싶었을 뿐인데 이장은 알량한 체면 때문인지 사과 대신에 얼마의 보상금만을 제시한다. 귀주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보상금도 이장에 대한 처벌도 아닌 잘못을 한 자의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라고 몇 번이고 호소한다. 법과 제도는 사람을 위한 것일 텐데 정작 귀주가 마주한 법과 제도는 자신이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한 시골 아낙의 순박한 주장을 들으며 느낀 것은 잘못했을 때 보상과 처벌에 앞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진심 어린 사과라는 것. 동서고금을 통해 모든 사람은 존중받기를, 인정받기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그 때문에 공무원들이 처리하는 민원서류 한 장 한 장에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한 사람의 소중한 인생을 다루고 있다는 무거움이 기반이 되어야 하며 이것이 행정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충북지방병무청장으로서 막중한 소임을 맡은 지 한 달여가 지났다. 공직자로서 국민에 대한 마지막 봉사라는 자세로 매일 매일 각오를 새롭게 다지고 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병무 행정을 구현하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적극적인 행정을 실천하는 것이 충북지방병무청장으로서 완수해야 할 중차대한 나의 소임이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관공서를 몇 번이고 찾는 번거로움을 없애고, 관행이라는 틀에 묶여있는 제도와 업무처리 과정을 새로운 시각에서 들여다봄으로써 병무 행정의 지평을 한 뼘이라도 넓히기 위한 노력, 이것이 국민이 체감하는 적극 행정의 구현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적극 행정은 사람에 대한 공감과 따스한 시선의 바탕 위에서만 꽃피울 수 있다. 사람을 존중하는 문화, 서로 소통하고 화합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민원은 국민이 원하는 것을 해결하는 것에 더해 상대에 대한 충분한 공감과 진정성이 전달될 때 비로소 완벽히 해결됐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귀주의 목소리를 소홀히 듣지 않는 따뜻하고 섬세한 직원들이 근무하는 기관, 창의적인 시각으로 새로움에 도전하는 직원들이 넘쳐나는 충북지방병무청이 되도록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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