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말 프랑스 사회는 극심한 분열과 갈등에 휩싸였다. 보불전쟁 패전으로 그렇지 않아도 땅에 떨어진 국민 자존심은 이른바 '드레퓌스 사건'으로 설상가상 사분오열돼 있었다.

독일에 여지없이 패배한 책임을 전가하기에 전전긍긍했던 군부에서는 우연찮은 기회에 독일과 내통한 국가기밀 누설 징후를 포착하고 유태인 출신 포병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에게 누명을 씌워 범인으로 지목하고 치밀한 계략으로 독일과 유태인을 향한 국민들의 반발 감정을 부추겼다. 드레퓌스 대위는 머나먼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에 유배되며 사건은 어영부영 봉합되는 듯했다.

이 무렵 소설가 에밀 졸라(1840~1902년)가 전면에 등장한다. 강직하고 의협심 강한 졸라는 이 음모의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고 정의로운 목소리로 자신의 안위에 개의치 않는 적극적인 드레퓌스 구명활동을 벌인다.

"진실, 저는 진실을 밝히겠습니다. 왜냐하면 정식으로 재판을 담당한 사법부가 만천하에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제가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제 의무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저는 역사의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공범자가 된다면 앞으로 제가 보낼 밤들은 가장 잔혹한 고문으로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속죄하고 있는 저 무고한 사람의 유령으로 가득한 밤이 될 것입니다.(…) 제가 고발한 사람들에 관한 한, 저는 그들을 알지도 못하며, 단 한 번도 만난 적도 없으며, 그들에 대해 원한이나 증오를 품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제게 사회악의 표본일 뿐입니다.(…) 저의 불타는 항의는 저의 영혼의 외침일 뿐입니다. 부디 저를 중죄재판소로 소환해 푸른 하늘 아래애서 조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고발한다' 에밀 졸라·유기환 옮김 책세상 발행>

▲ 에밀 졸라
▲ 에밀 졸라

당시 펠릭스 포르 대통령에게 보내는 '나는 고발한다' 라는 제목의 공개서한을 보냈는데 1898년 1월 13일자 '로로르(여명)'라는 신문 1면에 실렸다<사진>. 열정적이면서도 논리정연하고 사회정의와 평등, 진실을 갈구하는 지성의 목소리는 121년 전이라는 시차를 넘어 보편의 공감으로 생생하게 울려온다. 사필귀정, 1906년 드레퓌스는 최고법원에서 무죄를 확정 받고 군에 복귀했지만 그 후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유사한 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다. 드레퓌스 사건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 아닐까.

사회가 어지럽고, 분명한 정의가 방향을 잃고 오도될 때, 분연히 일어나 맑으면서 뜨겁고, 무게 있으면서도 높은 목소리를 내며 열렬한 참여의 기치를 드높이는 참된 지성의 목소리가 그립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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