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금강과 여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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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금강과 여울이야기
  • 충청투데이
  • 승인 2019년 09월 05일 16시 03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9월 06일 금요일
  •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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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 충남 금산문화원장

장수와 진안을 거친 물이 용담댐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부남을 지나 무주 앞섬으로 흐르고 덕유산 골짜기에서 설천을 지나 무주읍을 바라보며 흐른 물은 방우리 상류 소이진에서 합류를 한다. 여기서부터 금강이 시작된다. 꾸불꾸불하게 흐르는 금강의 한 모퉁이에 마치 방울처럼 매달려 있다고 해서 방우리란 이름을 가진 동네가 나온다.

부리면 동남쪽에 위치한 오지중의 오지로서 생활권이 무주군에 속한다고 할 만큼 금산으로부터의 접근이 쉽지 않은 지역이다. 방우리→농원→수통리 적벽강으로 이어지는 강줄기에는 청정 자연의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1610년 금산군수를 지낸 조선시대 3대 문장가이신 이안눌 선생이 성골산으로 불리며 신선들이 기거하던 곳, ‘갈선산’ 줄기를 이룬 붉은 절벽을 휘휘 감고 도는 ‘적벽강’ 봄마다 복사꽃이 지천이 될 터이니 무릉도원이 될 것이다. 금산에 계시면서 400여 수의 시로 금산군의 아름다운 시로서 표현했다.

금강을 따라 내려오면서 금강에 얽힌 역사와 민속이 풍부하게 잘 발달이 되어있다. 부리면 평촌 금강변에서 해마다 금강여울축제가 펼쳐진다. 19곳의 나루터, 15개 여울에 관한 이야기를 평촌에서 보존하고 있는 기우제 ‘농바우끄시기’와 우리 고장에서 구전되는 일노래 ‘물페기농요’가 시연을 보이고 이곳 강물에서 자라는 감돌고기, 쉬리, 꺽지, 피라미, 다슬기 등 생태와 환경에 대한 체험도 할 수 있다.

금강 본류 주변 마을에 중요한 역사가 있다. 길재의 학식과 충의를 숭모하기 위해 세운 사당 청풍사가 있고 조선 초기 대학자 문양공 눌재 양성지의 학덕을 숭모하기 위해 만든 사당 구암사가 있다.

절경을 뽐내는 귀래정을 뒤로하고 강물과 함께 내려가면 금강여울의 정취를 맘껏 누릴 수 있는 오토캠핑장이 나온다. 여울의 폭과 길이가 상당히 넓어 다슬기잡이, 어항 낚시 등 체험 놀이가 풍부하고 물도 얕아서 어린이들과 함께 할 수 있고 강 건너로 보이는 농바우와 양각산, 성주산의 깊은 골짜기들을 바라볼 수 있다.

농바우를 지나면 우리나라 반딧불이 최대 서식지 마달피가 나온다. 마달피 강 건너 화상골과 용강서원 앞으로가 반딧불이가 많이 서식하고 있어 매년 6월 첫 번째 금요일, 토요일에 ‘개똥벌레 그 빛을 찾아서’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연다.

조선조 때 명재상 우암 송시열과 유계 김원행 등 금강을 바라보며 기초유학을 가르쳤던 용강서원이 나온다. 또 자연의 생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천내습지에는 역사와 민속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1592년 임진왜란 때 금산에 첫 번째 전투지였던 저곡산성은 권종군수와 그의 아들 준과 함께 순절하신 역사에 한 장도 있다.)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에 만들어 놓은 용담댐은 금강의 환경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 금산에서 생겨나는 습지는 부리면 방우리에서 농원 수통리로 이어지는 습지와 농바우에서 천내대교 밑까지 이어지는 습지가 있다. 습지에서 자생하는 동·식물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에코습지로 이름일 지어 천연습지 지정을 바라고 있다.

지금은 천내대교가 놓여 있지만 그 이전에는 배로 건넜다. 배를 만드는 과정과 배가 건립이 되면 무사안녕을 비는 ‘천내강 배묻이 굿’이라는 민속을 발굴하고 있고 천내대교를 지나면 고려말 공민왕이 세웠다는 용호석이 있다. 용석은 승천하는 용의 모습이 역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사슴뿔 모양과 수염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호석은 앞발을 세우고 앉아서 포효하는 호랑이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용호석을 비켜간 강물은 금산 남이면에서 발원하여 남일면, 금산읍, 제원면을 거친 봉황천과 맞이한다.

천년고찰 신안사에서 내려온 작은 개울과 만나면서 자지산성과 부엉댕이 산 중턱에 인공폭포를 만들어 어죽 특화 지구를 만들어 놓았다. 백두대간의 마지막 자락인 월영산은 정상에서 내려보는 금강의 비단결 같은 아름다운 강줄기와 깍아낸듯한 절벽과 한폭의 산수화를 만들어 놓은 취병협이 있다. 소이진부터 취병협으로 내려온 강물은 많은 역사와 전통, 생태자원을 뒤로하고 취병협에 협곡을 따라 영동으로 훌쩍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