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각 대전시 건축사협회 회장

아침 저녁의 선선한 바람에 가을을 떠올린다. 열대야같은 뜨거운 바람을 차단코자 닫았던 창문을 열어 바람 본연의 서늘함을 맛보기도 한다. 눈이 트이며 세상이 들어온다.

집은 삶의 둥지이며 울타리이다. 작은 공간에서 가족이 한 이불속에서 몸을 비비며 두런두런 나누는 소통의 창구였고 낮은 담 너머 주고받는 이웃과의 삶이 연계돼 더 큰 가족이 되는 그런 곳이었다. 문을 달면 방이 되고, 열면 대청이 돼 가족의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이뤄졌던 과거의 집이 때때로 그리워지는 것은 현재의 주거형태와 구조의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도시정비를 빌미로 많은 마을이 사라지고 주거가 집단화되면서 토지의 효율성과 건축의 경제성이 유연한 공공성을 사라지게 하고 집은 두꺼운 콘크리트 벽으로 나뉘어져 크기와 위치로 삶의 수준과 행복의 척도를 판단하게 됐다. 또한 라이프 사이클의 변화, 가족의 해체 등의 사회 현상들로 도시형 생활주택같은 새로운 유형이 생겼고, 자녀들은 부모의 집을 벗어나 학교나 직장 근처의 독립된 생활을 원하고, 부모세대도 자녀들이 없는 빈 집의 크기를 줄여 작은 곳으로 이사를 하는 현상을 일으켜 전통적 주거 패턴의 변화를 가져왔다.

문제는 새로운 현상으로 발생한 주택들이 조악하고 불편해 여전히 새로운 집을 찾아다니게 해 '임대'하는 삶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관과 민이 합의해 지은 그 주택들은 영원한 임시 주거일 뿐 집은 늘었어도 여전히 자신만의 집은 부족하다.

2002년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기고 2014년에는 118.1%로 상승했지만 우리나라 자가 점유율(전체 가구 중 자기 소유 집에서 사는 가구의 비율)은 국토부 통계로 2010년 54.2%로 밖에 되지 않는다. 시세차익, 새 집으로의 이동, 오래됨과 불편함에 대한 잘못된 사고 등으로 자신들의 '터'를 지키고자 하는 이가 거의 없다. 결국 새 집에 대한 열망은 더 뜨거워만 지고 주거 비용은 계속 상승하여 젊은이들은 더욱 갈 데 없는 '임대인'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주거 공간의 우월성은 개별적으로 고립되는 것이 아닌 그 개별적 공간이 화합하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집단화하는 주거에서 최우선시 돼야 할 것은 공공성이다. 최근에 주목받는 '쉐어하우스'나 '코하우징' 등의 주거 유형에서 커뮤니티를 공유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실험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며 유심히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대상이다.

건축물은 삶을 담는 그릇이다. 삶의 유연함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의 유연성이 필요한 것이다. 정해진 공간을 콘크리트 벽으로 구획해 적층해 버리고 알파룸이니, 드레스룸이니 옵션으로 치장하는 작금의 주거 형태로는 유연성을 담기에는 역부족이다. 서로에게 관심을 갖는 주거 유형의 개발이 필요하다. 소형 주택들의 커뮤니티를 공유하는 방식의 확장된 형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도시 발전 전략이 팽창.확장 위주의 신도시 개발에서 구도심을 되살리는 도시 재생으로 방향 전환하고 있는 지금, 아직 슬럼화 속에 간직되고 있는 커뮤니티의 흔적을 되살릴 수 있는 사업 구상이 필요하다. 도시의 정체성은 이 커뮤니티의 부활을 통해 확실히 정립될 것이며, 정주성과 공공성이 어우러진 '우리의 마을'이 점진적으로 확장되어질 것이라 감히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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