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엔디컷 우송대학교 총장

필자는 역사를 좋아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쟁사도 일부러 찾아보기 때문에 역사와 관련된 대화를 즐길 정도 수준은 된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6·25전쟁 당시 대전에서 있었던 중요한 전투에 대해 알게 되면서 ‘내가 모르는 희생과 용기가 많겠구나!’하며 작은 충격을 받았다.

최근 대전역에서는 69년만의 추모제가 열렸다. 추모의 주인공은 故 김재현 기관사였다. 6·25가 발발했던 1950년 당시 그는 28살이었다. 이미 만반의 전쟁준비를 했던 북한은 거침없이 밀고 내려왔다. 부산 방어선이 충분히 구축될 때까지 미 육군 24사단장 윌리엄 딘(William F. Dean,1899~1981)은 6일 동안 대전을 사수하고 영동에 저지선을 구축하라는 ‘지연작전’을 수행해야 했다. 그러나 북한군은 생각보다 강했고 제24사단 기능을 거의 마비시키고 설상가상 윌리엄 딘 소장까지 북한군 후방에 낙오된다. 마치 ‘라이언일병 구하기’처럼 그를 구하기 위해 자원한 사람이 바로 당시 한국철도원 소속 김재현 기관사, 황남호 부기관사, 현재영 부기관사였다. 미 육군 특공대 33명을 태우고 고립된 윌리엄 딘 소장을 구하기 위해 가던 기관차는 세천역 부근에 매복해 있던 북한군의 집중포화를 받았고 김재현 기관사는 8발의 총탄을 맞고 스러졌다.

김재현 기관사가 사망할 당시 한 살짜리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 김제근 씨가 추모사에 참석해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참석자 모두 숙연한 마음이었다. 7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버지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아들은 노인이 됐고, 대전역은 높은 빌딩이 세워져 대전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많은 것이 변하고 전쟁의 공포는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김재현 기관사가 그날 어렵게 꺼냈을 대단한 용기는 다시 되살려 볼 수 있었다. 그에 관련된 역사와 이야기는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에서 자세히 볼 수 있고 대전역 동광장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호국철도기념동상이 있다. 6·25 당시 군인과 경찰에 이어 가장 많이 숨진 직업군이 철도원이었다고 한다. 2012년 故 김재현 기관사는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민간인으로는 유일하게 미국 국방부로부터 ‘특별공로훈장’을 받았다.

현재 그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전쟁당시 대전을 사수해야했던 윌리엄 딘 소장은 대전이 함락된 후 본대와 떨어져 36일간이나 산속을 헤맸다고 한다. 이후 3년간 북한군의 포로로 생활하다가 미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전쟁 발발당시 미군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남한을 돕기 위해 이 땅에 왔다. 그 중 한 명이 윌리엄 딘 소장이었다. 또 그를 살리기 위해 용감하게 뛰어든 故 김재현 기관사가 있었다.

대전에서의 생활이 벌써 십년 남짓 됐다. 아파트 옆 천변 산책을 좋아하고 어느 식당의 국수가 맛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이렇게 작은 행복을 누리며 평화로운 지금이 참 좋다. 윌리엄 딘 소장은 전쟁 후 포로에서 석방되는 날 ‘꿈만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들의 희생덕분에 오늘을 잘 살고 있는 필자 역시 꿈만 같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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