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석 충북교육정책연구소 소장

미국 동부지역 학교를 둘러본 출장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 그것은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들에서 보았던 모습이다.

그 학교들에는 교실마다 학습자상(Learner profile)이란 것이 예외 없이 붙어 있었다. 안내해주는 학교 관계자에게 물어보았다. 학습자상을 게시하는 것이 의무냐고. "그렇지 않다. 이러한 학습자를 기를 수 있어야 우리 교육과정의 목표를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붙여둔다."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교육과정에서 학습자는 열 가지 특징 또는 역량을 기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시 말해 질문하는 사람, 지적인 사람, 생각하는 사람, 소통하는 사람, 의로운 사람,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 배려하는 사람, 도전하는 사람, 균형 잡힌 사람, 성찰하는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학습자가 갖추거나 지향해야 할 세부적인 특징 또는 역량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 교실마다 게시된 학습자상은 우리나라 교육과정과 대비되면서 몇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우리나라 2015 교육과정은 네 가지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다. 자주적인 사람, 창의적인 사람, 교양 있는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상을 구현하기 위해 학교 교육 전 과정을 통해 중점적으로 기르고자 하는 핵심역량을 규정하고 있다. 자기관리 역량, 지식정보처리 역량, 창의적 사고 역량, 심미적 감성 역량, 의사소통 역량, 공동체 역량이 그것이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우리 교육과정의 인간상은 학습을 통해 여러 역량을 길러서 도달해야 할 목표의 성격을 지닌다. 반면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교육과정의 학습자상은 목표라기보다는 학습의 과정에서 자질과 능력을 기르도록 자극하고 인도하는 측면이 강하다.

추구하는 인간상을 제시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학습자상을 제시하는 것이 좋을까. 훌륭한 인간상을 제시함에 앞서 우선 바람직한 학습자상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러한 학습자상이 잘 보이게 교실마다 붙어 있다면 수업 장면에서도 꽤 유용할 것 같다. 예를 들어 수업 주제나 활동에 대해 더 많은 호기심과 질문, 탐구 자세를 자극할 수도 있겠다(질문하는 사람). 또 지나치게 수동적이거나 주저하는 학생에게는 사전 숙고와 과단성을 가지고 불확실한 것들에 접근하고, 새로운 생각과 혁신적 전략을 탐험하도록 촉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도전하는 사람). 요컨대 교사와 학생에게 수업마다 어떤 역량을 더 기를지 성찰해보고 지향할 목표를 가늠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학교에서도 대부분 학교 교육과정에 '그리는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목표가 문건 속에 또는 활동 속에 숨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학생들에게는 그러한 인간상이 어쩌면 너무 먼 목표일 수도 있다. 학교마다 공동체가 숙의해 '그리는 학습자상'과 길러야 할 역량을 분명히 정한 뒤 교실마다 붙여두면 어떨까 싶다. 수업마다 활용된다면 더욱 좋고. 각 교과 핵심역량과 연결해 보면 더욱더 좋을 테고.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