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봉 시인·평론가·효문화신문 명예기자

카톡방에 가면 내 소개자료가 있다. '내가 이 세상에 와서 가장 잘한 일은 당신을 만난 일'이었다고 써놓았다. 그것은 흔한 말이지만 내 진심이다. 스물세 살 젊은 나이에 나한테 와서 지금까지 오십 년 가까이 호흡을 같이 하고 있다. 내 생애 세 번(4년간) 아내와 떨어져 살았다. 주말부부로 살았다. 아내가 써 보낸 그리움을 읽으며 나는 외로움을 견뎠다.

내 생애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아내다. 비바람이 지나도 한숨으로 읽지 않았다. 노을 앞에 서서도 내가 없는 아내의 외로움이 저리 붉게 타는구나 생각했다. 사랑은 리얼이고, 필링이고, 터치이다. 우리들의 사랑은 오랜 기다림 속에 피어난 난초처럼 순결 그 자체다. 그립다 쓰지 않아도 그리움을 읽을 수 있었고, 보고 싶다 적지 않아도 내 눈앞에 복사꽃 같은 웃음 지으며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려낼 수 있었다.

그런 아내가 칠십을 넘기면서부터 자꾸만 낡음의 고개를 넘으며 힘겨워하고 있다. 부품이 자꾸 고장 나 수리점 방문을 문지방 드나들 듯 한다. 불면으로 밤을 지새우고, 입맛이 없다면서 곡기를 끊고 당뇨에 금기시하는 군고구마나 감 등으로 연명한다. 자주 머리고 아프다 하고, 무릎도 고장 나 X-ray 신세도 진다. 남은 죽 먹듯 하는 여행 한 번 못 해보고, 콘서트장 한 번 못 가 봤다. 움직임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원래 못난 사람이기에, 재테크에 열등생이었기에 기회도 여러 번 놓치고 분복대로 사는 게 현명한 생활방식이라 자위하며 살고 있다. 친구들 중에는 전원주택 지어놓고, 제주도나 유명관광지에 회원권 마련해놓고, 한 달이면 보름 이상씩 그곳에서 산다는 얘기를 듣고도 그런 얘기를 아내한테 하지 않는다. 이 나이에 스트레스 받게 해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당신이 지어주는 그리움을 읽고, 눈부시게 맑은 날에는 점 하나만 찍어도 알 수 있는 당신의 웃음을 읽고, 저녁 창가에 누군가 왔다 가는 소리로 빗방울 흔들리는 밤에는 당신의 눈동자 속에 담긴 기다림 읽어내는 내 생애 가장 소중한 편지는 당신이었다. '바람 지나면 당신의 한숨으로 듣고, 노을 앞에 서면 당신이 앓는 외로움 저리도 붉게 타는구나'하고 느낀다.

콧날 아리는 사연으로 다가오는 삼백예순다섯 통의 편지, 책상 위에 쌓아두고, 그립다 쓰지 않아도 그립고, 보고 싶다 적지 않아도 우울한 내 생애 모두 날려버리는 순풍이요 강풍은 바로 당신이었다. 여태껏 한 번도 부치지 못한 편지는 당신이라는 이름이었다. 당신이 괜찮은 척하는 만큼 나도 괜찮은 것이라고, 당신이 참아내는 세월만큼 나도 견디는 척하는 것이라고 편지 첫머리마다 쓰고 또 쓰고 싶었던 편지도 당신이라는 이름이었다.

내 생애 당신이 가장 아름다운 편지였듯이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답장도 삼백예순다섯 통의 당신이었다. 당신은 나에게 눈부신 세상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사람이다. 당신으로 하여 이 세상 추운 날 하나 없이 항상 따뜻하게 살 수 있었다. 때론 아침에 내리는 이슬비처럼 보드라운 눈빛으로, 때론 머리맡을 쪼는 따가운 태양처럼 강렬한 눈빛으로 이제 당신을 지금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싶다. 내가 뛰어들 수 있는 사랑의 바다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기쁨이다.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은 조용히 사랑한다는 뜻의 다른 표현이다.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은 자연의 하나처럼 사랑한다는 뜻의 다른 표현이라 생각하며 남은 생애 멋지게 장식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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