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 단국대 사학과 교수·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이들은 물류업체 종사자들인 듯하다. 최근에는 신선도를 강조하기 위해 새벽에 집 문 앞까지 배송하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나라의 물류를 책임졌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보부상들이다. 보부상이란 비교적 가벼운 물건을 보자기에 싸서 머리에 이고 다니던 보상과 큰 생활용품을 지게에 지고 다니는 부상을 합쳐서 부른 명칭이다.

보부상은 조선 전기부터 존재했지만 전국적으로 확대된 시기는 17세기이다. 이는 임진왜란 이후 상업억제책인 억말책이 점차 이완되고, 대동법의 실시로 장시(場市)가 늘어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방 군현의 곳곳에 장시가 새롭게 설치되면서 장시들 간의 물품 교류를 책임지는 보부상도 점차 늘어났다. 보상과 부상은 1883년에 혜상공국이 설치되면서 통합되었고, 1899년 상무사로 이속되면서 보상은 우사(右社), 부상은 좌사(左社)로 불리게 되었다. '보부상은 나라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며, 보부상들에게 죄인수배를 맡기면 바로 체포 된다'라는 미국 외교관들의 기록을 통해서도 당시 보부상들은 단순한 물류 전달자의 범위를 넘어 국가 교통· 통신제도를 보완하는 경제 동맥이자 정보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물산이 풍부했던 충남 내포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보부상의 활동이 매우 활발했던 곳이었다. 이는 산이 높지 않고 들판이 너른자연지형적 조건과 함께 수로 교통이 발달하여 내륙 깊숙이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서울과 경기 등 물품의 최대소비지가 멀지 않았다는 점도 주요했다. 19세기에 충청도에 설치되었던 156개의 장시 중 약 40%에 달하는 60개가 내포지역에 위치해 있었다는 점은 당시 내포의 경제활동이 얼마나 활발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현재도 내포지역에는 예덕상무사·원홍주육군상무사·저산팔구상무사가 현존해 있으며, 이들 단체의 연합체인 충남보부상협의체가 구성되어 있다.

그동안 충남도에서도 보부상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여러 사업을 진행하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예산군 덕산에 조성되는 내포보부상촌이다. 2004년 '내포문화권 특정지역 개발계획'의 핵심선도 사업으로 선정되어 시작되었으며, 2016년 착공과 함께 2020년 완공을 앞두고 있다.

이밖에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에서는 보부상 관련 유물을 수집하고, 충남보부상협의체 운영을 지원하고 있으며,충남문화재단에서는 보부상 자원을 지역의 대표 문화예술콘텐츠로 육성하기 위한 '보부상로드' 사업을 기획하여 특색 있는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다. 충남경제진흥원에서는 충남의 소상공인들을 위한 '충남보부상 콜센터'를 운영하는 등 다양한 사업들이 시행되고 있다.

내포의 정체성은 서민성, 개방성, 융합성, 진취성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여기에 가장 부합되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보부상이며, 향후 전국 유일의 내포보부상촌을 통해 내포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내포보부상촌은 개장을 앞두고 있지만 선결해야 할 과제들도 있다. 이를 테면 킬러콘텐츠의 부족으로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동인(動因)이 부족하고, 운영 주체를 민간에 위탁하고 있어 전문성과 체계성이 다소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보부상촌이 내포를 대표하는 역사문화 테마파크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충청남도와 도민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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