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관 대전시 문화유산과장

도시여행에서 문화유산이 차지하는 역할은 크다. 여행 패턴의 다변화로 관심 분야들이 점점 더 분산되고는 있지만, 문화유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앞으로도 쉽게 급감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는 '대전방문의 해 3개년 계획' 기저에 반드시 문화유산 정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전방문의 해의 첫 해 사업에 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다소 미흡하다는 일부 지적들이 있지만 이는 문화유산 관련 정책이 가지는 보수성으로 인해 잘 드러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유산 정책에 있어 가장 중요하면서도 잘 드러나지 않는 대표 사업이 보수·정비다. 문화유산은 '원형보존'을 대 원칙으로 하므로 늘 원래의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아파트 몇 채의 비용을 어디에 쓴 것이냐?'와 같이 다소 비난어린 목소리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돈 쓴 티가 나지 않는 것이야말로 원칙을 잘 지켜왔다는 반증이 된다.

매년 꾸준히 추진되는 보수정비 외에 대전방문의 해를 맞이해 우리시에서는 다양한 문화유산관련 정책들을 추진 중이다. 그 중 핵심 정책에 대하여 2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시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문화유산 정책의 첫 번째는 근현대문화유산의 기록·보존이다. 근현대문화유산의 정책 수립에는 몇 가지 어려움이 있는데, 우선 전통시대 문화유산과 달리 그 가치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점이다. 이중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것들은 ‘적산(敵産)’이라는 불명예를 아직도 완전히 불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간혹 철거 관철을 위한 개발업자의 주장으로 사용되곤 한다.

이어 근현대문화유산의 모호한 시간적 정의로 인해 갈수록 그 개체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기억'들과 결합되면서, 특히 그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맞물려서-무수히 많은 보존 주장을 불러온다. 하지만, 도시의 유기성을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도시가 존립하는 이상 생성-소멸은 당연한 순환과정이므로 보존 요구 대상 모두를 보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어려움이 있다.

마지막으로 등록문화재가 되어도 공공의 소유가 아닌 이상 소유자가 언제든지 철거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등록문화재가 표방하는 '적극적 활용을 통한 보존' 측면에서 강제성 약화는 당연한 선택이었을지 모르나 영구적·물리적 보존 측면에서는 적잖은 문제점이다.

이러한 여건을 감안하여 시가 택한 정책은 '기록적 보존'이다. 지정 또는 등록되지 않아 소멸될 우려가 있는 근현대유산들을 선제적으로 기록·조사하고 이 과정에서 확인되는 중요성 혹은 가치 홍보를 통해 물리적 보존의 가능성을 제고하자는 취지다. 기록적 보존은 재개발과 재건축 지역과 같이 '집단 기억의 자발적 파괴'가 발생하는 지역에서도 추진된다. ‘도시, 기록으로 기억하다’라는 부제의 이 사업은 전국적으로도 유례가 거의 없는 사업으로, 도시·건축·민속 분야의 아키비스트(archivist)와 시각 예술가들이 참여해 소멸될 지역의 포괄적인 기록조사, 아카이빙 및 전시를 진행함으로써 기억을 보존한다.

기록적 보존에 역점을 둔다고 해서 물리적 보존을 등한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민·관이 함께 참여해 주요 근현대문화유산을 보존·활용하기 위한 여러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다. 다소 긴 시간 고민해 왔던 옛 충남도청이 대표 사례이며, 이제 곧 근현대문화유산의 구심점으로써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다.

기록을 통해 보존되는 도시의 기억들은 그 자체가 대전의 콘텐츠이자 스토리가 될 것이다. 이러한 기억들이 옛 충남도청을 비롯한 근현대문화유산 공간에 효과적으로 덧씌워진다면 대전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의 발걸음을 오래 오래 붙잡아 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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