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규의 서예이야기]

양의 주인이 동네 사람들을 이끌고 양자에게 노복(奴僕) 청하여 양을 쫓아가려 하자, 양자가 물었다. “단 한 마리의 양을 잃었는데 어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뒤쫓아 가는고.” 이웃집 사람이 대답했다. “도망간 쪽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이오.”

얼마 뒤에, 그들이 피곤한 몸으로 돌아와서 양을 잃었다고 했다. 양자가 양을 잃은 까닭을 묻자, “갈림길을 가면 또 갈림길이 있어서, 양이 어디 갔는지 모르게 되어 버렸소(多岐亡羊).” 양자는 그 말을 듣고는 묵묵히 앉아 입을 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하루종일 웃는 얼굴 한번 보이지 않았다. 제자들이 기껏해야 양 한 마리를 잃은 일이요, 더구나 자기의 양도 아닌데, 그렇게 침울해 있는 것은 이상하다 생각하고, 까닭을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제자인 맹손양(孟孫陽)은 스승의 고민을 알지 못하고 선배 제자인 심도자(心都子)에게 양자가 침묵하는 까닭을 물으니 심도자는 “단 한 마리의 양이라 할지라도, 갈림길에서 또 갈림길로 헤매어 들어가서 찾다가는 결국 양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하물며 학문의 길은 어떻겠느냐? 목표를 잃고 무수한 학설들에 빠져 헤맨다면 아무리 노력한들 그 또한 무의미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장자(莊子)’ 변무편(騈拇篇)에도 양을 잃은 이야기가 있다. 남녀종이 책을 읽고 주사위 놀음을 하다가 양을 잃었다는 이야기로, 이곳에서도 주위의 사물이나 현상에 휩쓸리다 보면 자기의 본분을 잊게 된다는 비유로 사용되고 있다. 망양지탄(亡羊之歎)이라고도 한다.

학문에는 지식의 집적과 이론의 분석이 필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부질없이 지엽말절을 꼬치꼬치 캐고 살피는 일에 빠져서 근본 목표를 잃어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란 것을 풍자한 이야기이다.

20세기를 가득 채웠던 수많은 승리와 좌절, 환희와 비탄을 돌이켜보면 승리를 기리고 패배를 모멸하는 숱한 담론 속에서 서서히 그리고 결정적으로 논의의 중심에서 밀려난 것은 바로 사람들의 삶 그 자체이다. 인간논리와 인간에 대한 애정이다.

다기망양(多岐亡羊)의 형국이어서 이들 논의는 그가 복무해야 할 대상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지적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최후의 근본적 성찰로서의 휴머니즘(인간을 사랑하고 존중하자는 주의)이 요청되는 역사적 조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국전서예초대작가·청곡서실운영·前대전둔산초교장>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