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생태원장을 지낸 최재천 교수가 한 언론에서 서울의 심각한 미세먼지, 대기오염에 대해 무학(無學)대사를 탓하는 글을 썼다.

세계적으로 분지에 있는 도시들이 대기오염이 심각한데 서울도 낙산, 인왕산, 남산, 북악산으로 둘러싸여 그렇다며 결국 외세를 막는 데만 신경을 썼지 '미세먼지를 걷어낼 바람‘은 생각 못했다는 것이다.

오늘의 서울을 조선왕조의 도읍지로 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무학대사. 그만큼 그는 태조 이성계와 밀접한 관계에 있어 왕이 되기 전부터 교류를 했고 왕이 될 분을 키워 준 인물이다.

간월도. 충청투데이 DB
간월도. 충청투데이 DB

하루는 이성계가 기둥 세 개를 지고 가는 꿈을 꾸고 무학대사를 찾아가 해몽을 부탁했다. 무학대사는 기둥 세 개를 짊어 진 것을 임금 왕(王)을 뜻하는 것이니 천기를 누설하지 말고 근신할 것을 권했다는 설도 있어 두 사람은 일찍부터 새 왕조 창업에 뜻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이성계를 왕위에 옹립하고 새 도읍지를 계룡산 신도안이 아닌 한양으로 변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무학대사의 출생지는 경상남도 합천으로 기록돼 있다.

속성은 朴씨이고 법명은 자초(自超)이다. 1344년 18세에 출가해 불도를 닦고 1353년에는 중국 원(元)나라에서 유학을 했다.

그런데 무학의 출생지에 대해 충남 서산지방에선 간월도(看月島)를 주장한다(이준호 서산문화원장).

그의 출생 전설은 이렇다. 무학의 어머니가 해산물을 간월도에서 장터로 팔러 가는 길에 아기를 낳았다는 것인데, 어머니는 아기를 풀숲에 잘 눕혀 놓고 장을 보고 와서 보니 학 한 마리가 아기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어릴 때 이름을 무학(無學)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다.

간월도에 전설이 아닌 실제 존재하는 이야기는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어느 날 둥근 달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때부터 섬의 이름도 '달을 본다'는 뜻의 ‘간월도’로 불리어 졌고 절 이름도 ‘간월암’이 된 것이다.

정말 서산 앞 바다의 간월도는 작지만 아름다운 섬으로 물이 들어오면 섬이 되고, 물이 나가면 육지와 연결되는 신비감을 자아낸다. 간월암 뜰에서 서해를 바라보는 것 이야 말로 모든 근심 걱정을 한꺼번에 날려 버리는 평화를 느끼게 해준다.

무엇보다 간월도에서의 최고의 절정은 바다위로 떠오르는 둥근 달을 보는 것이다. 바로 무학대사가 불도(佛道)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 간월의 순간, 비록 그 경지는 이르지 못할 망정, 여기서 바다위의 달빛을 보노라면 인생의 덧없음과 우주 대자연의 숨결에 젖어들 수 있다.

무학대사에 얽힌 간월도의 전설은 한 둘이 아니다. 그가 이 섬에 있으면서 간월도의 명물 어리굴젓을 왕이 되기 전 이성계에게 보내 주었으며 이성계는 이것을 매우 즐겨 먹었다고. 지금도 서산의 간월도 어리굴젓이 명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데 그것은 이곳의 굴의 생태학적 특성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즉 이곳 굴은 물살이 거센 바위에 붙어 있기 위해 빨판이 발달됐고 파도에 시달리다 보니 육질도 단단해 져서 식감을 돋운다는 것이다.

이밖에 간월도에는 '쌀 나오는 바위 구멍' 전설도 있는데 무학대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제자들이 쌀을 너무 많이 빼내려다가 구멍이 닫혔다는 것…. 어쨌든 간월도 푸른바다는 오늘도 무학대사의 큰 그림자를 안고 출렁이고 있다.

[변평섭의 충청역사유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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