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균 대전도시공사 사장

8월 달력을 보면 계절과 관련된 낯익은 몇가지 단어가 눈에 띈다. 8월 7일이 칠석(七夕), 8일 입추(立秋), 11일 말복(末伏), 23일 처서(處暑)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음력7월부터 가을로 여겼기 때문인지 가을이 연상되는 날의 명칭들이다. 여기서 가벼운 퀴즈 하나. 다음 중 24절기에 속하지 않는 날은? ①칠석 ②입추 ③말복 ④처서. 정답은 칠석과 말복이다. 24절기는 계절의 변화를 나타내는 날인데 보름 간격으로 한달에 2번씩 배치된다. 삼복과 단오, 한식 등은 날씨와 밀접하지만 24절기에는 포함되지 않고 잡절(雜節)이라고 구분한다. 칠석은 날씨와는 관계없는 세시풍속이라고 한다.

역법(曆法) 책을 보면 절기와 관련된 여러 이론이 등장하지만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 입장에서는 "다른 건 속여도 절기는 못 속인다"는 어른들의 말씀만큼 쉬운 설명은 없는 듯 하다. 작년의 경우만 보더라도 더위와 관련된 온갖 기록을 갈아치운 여름이었지만 처서였던 8월 23일부터 무더위가 수그러져 24일에는 최고기온이 26℃까지 내려간 것으로 기록돼 있다(기상청 홈페이지). 처서 전날인 22일의 최고기온이 38℃까지 올랐었다는 사실을 보면 "절기는 못 속인다"는 말이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24절기가 언제부터 쓰였고 우리나라에 들어 온지 얼마나 됐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삼국시대에 이미 실생활에 적용됐다는 문헌기록이 있고 조선시대의 농가월령가는 24절기마다 농사일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니 적어도 천년 가까이 우리생활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이 사용하는 24절기가 음력이 아니라 양력을 기준으로 해마다 날짜가 정해진다는 사실은 잘 모르는 듯 하다. 음력은 달이 차고 기우는 변화에 기초한 역법이지만 유독 24절기는 태양과 관련이 있다. 태양이 지구를 도는 위치를 가정해서 (실제로는 지구가 태양을 돌지만) 그 위치가 15도 변할 때마다 계절의 변화를 상징하는 절기를 배치한 것이다. 그래서 음력 명절이 해마다 날짜가 변하는 반면에 양력이 기준인 24절기는 해마다 날짜가 비슷하다. 예를 들어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는 처서는 작년에도 올해도 그리고 내년에도 양력 8월 23일이다. 달의 움직임만으로는 계절과 시간을 설명하기 부족했기에 태양의 변화까지 고려한 동양의 지혜가 엿보인다.

타오르는 태양과 뜨거운 여름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 같았지만 8월 중순을 넘기면서 날이 짧아지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지고 조석(朝夕)으로 부는 바람에서 상쾌함이 전해지니 가을이 머지않았다는 신호다. 여름이 한고비를 넘기고 처서가 코앞이라는 것은 한해의 3/4이 지나고 있다는 말이다. 개인이나 가정도 그렇지만 기업에 있어서도 연초에 세운 계획을 되돌아보고 방향이 어긋났거나 속도가 뒤처진 부분이 있다면 지금이 바로잡을 수 있는 호기다. 너무 많이 진행된 일은 나중에 잘못을 발견해도 되돌리기 쉽지 않고 정상화를 위해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부가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한해가 기울고 업무를 마무리해야 할 시기에는 오류를 알면서도 수정할 여유가 없다.

공기업 경영은 더욱 그렇다. 대전도시공사의 사업 대부분은 시민편익과 시정발전에 직결된다. 바둑은 승패가 갈린 다음에 복기(復棋)하지만 공기업은 수시로 사업의 방향성과 속도를 점검해가며 처음에 설정한 목표와 성과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공기업이 쓰고 있는 모든 자원은 시민의 것이기 때문이다.

공익적 가치의 구현이라는 시대정신에 부합해 대전도시공사의 업무량이 크게 늘어났다. 혹시 작은 누수라도 있을지 임직원 모두가 시민의 눈으로 사업의 진척상황을 점검해 시민의 소중한 자원이 필요한 곳에 효과적으로 쓰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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