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윤 배재대학교 주시경교양대학 교수

전한의 13대 황제인 효애황제는 재위 당시 실권은 외척에게 빼앗겼으며, 미소년인 동현을 사랑하며 동성애에 빠지고 말았다. 황제는 비위를 맞춰가며 복종하는 동현을 무척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팔베개를 하고 자는 그를 깨우지 않기 위해 스스로 팔까지 잘랐다고 전해질 정도로 총애했다. 동현에게 수많은 벼슬과 녹봉을 내리려 하자 안 좋은 소문이 사방에 자자했고, 이러한 상황을 우려한 신하 왕가는 '천인소지, 무병이사(千人所指, 無病而死)'라는 말로 왕을 경계했다. 이는 "천명이 손가락질을 하면 병이 없어도 죽는다"는 뜻으로, ‘한서’ 하무왕가사단전에 전하는 이야기다.

음성이 아닌 몸짓이나 손짓으로 표현하는 것을 우리는 비언어적표현이라고 한다. 이 또한 의미를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며, 그중에서도 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특히 손가락은 다양한 이름을 지니면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엄지는 검지를 만나서 하트를 만들고, 가장 긴 중지는 으뜸과 장수를 나타내며, 약지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정표를 걸 수 있다. 마지막 새끼손가락은 상대방과 약속을 통한 신뢰를 쌓게 해주니 모두가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전하는 표현들이다.

반면 똑같은 손가락이라도 엄지가 밑으로 향하면 조롱하는 의미가 되고, 검지가 상대방을 향해서 가리키면 기분을 상하게 하며, 중지를 세우게 되면 언어보다도 강한 욕설을 표현할 수도 있다. 이들은 모두 상대방의 나쁜 행동을 흉보거나 지탄(指彈)하는 손가락들로, 여기서 감정이 격앙되면 손가락질을 넘어서 삿대질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손가락은 몇 치 되지도 않는 길이로 자신의 감정을 대변할 수 있으며, 상대방의 감정을 극과 극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다.

매스컴이나 주변을 둘러보면 마치 손가락질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착각에 빠진 듯 남을 비난하고 혐오하기에 바쁜 손가락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남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손가락질을 받는 피해자(?)가 더욱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사회적 범죄나 물의를 일으켜서 받는 것은 그렇다 쳐도 자신의 안리(安利)를 위해서 뻔뻔함으로 일관하는 자들의 태도는 가히 볼썽사납다. 주변에서 쏘아대는 비난의 화살을 본인 자신만 인지하지 못하고 독야청청하듯 의연하기까지 하다. 왕가처럼 충언을 해주는 이도 없으며, 스스로 자각하기를 바라는 것도 언감생심이다. 시간이 흘러 그들을 향했던 손가락을 거두고 불가근(不可近)의 거리를 두면 그만인 관계가 되고 마는 것이다. 사실상 절연(絶緣)을 선언한 셈이다.

손가락질은 해서도 받아서도 안 될 일이다. 매사에 조심해야겠지만 인간관계를 하다 보면 누군가의 비난을 받을 때도 있을 것이며, 그렇다면 빨리 그 저의를 찾아서 스스로 고쳐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타인을 손가락질하면 나머지 손가락은 자신을 향한다는 것도 명심하고 반구저기(反求諸己)의 태도로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 여러 사람의 손가락질을 받으면 목숨까지도 위태로울 수 있다는 왕가의 엄중한 경고를 가슴에 새긴다면 무병장수도 충분히 가능할 일이다. 이제 '욕먹어야 오래 산다'는 말은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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