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청양의 골드러시 金보다 값졌던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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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의 골드러시 金보다 값졌던 ‘사투…’
  • 충청투데이
  • 승인 2019년 08월 15일 18시 41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8월 16일 금요일
  •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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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구봉광산 붕괴와 김창선(양창선)
구봉광산, 1949~1970년 금 1113만여g 캐내
1967년 8월 22일 붕괴 사고… 김창선氏 갇혀
해병대 통신병 출신 김씨 사무실과 통화 성공
전국 생방송… 박정희 대통령 빠른 구조 지시
368시간 35분 만에 구조… 온세상 감동 퍼져
90 노인된 김창선氏, 부여서 봉사활동 지속
▲ 구봉광산에 갇혔던 김창선 씨 구조 당시 모습(왼쪽)과 2016년 백제체험 박물관 개관식 참석 때의 모습. 청양군 제공

[충청투데이 충청투데이] 미국 서부 개척자들이 금광을 찾아 몰려 들 듯이 충남 청양군은 한 때 금을 캐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구봉광산. 최고 절정기였던 1949년부터 1970년까지 구봉광산에서만 캐낸 금이 1113만 6100g이었고 은 (銀) 33만g이 생산됐으니 우리나라 최고의 '노다지'라고 부를 만 했다. 광산 근처에는 술집이 즐비했고 전국에서 모여든 한량들로 항상 북적였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예기치 않던 폭풍이 구봉광산을 강타했다. 1967년 8월 22일 낮 12시40분, 지하 125m에서 막장의 물을 퍼내던 김창선(당시 35세· 처음에 양창선으로 알려짐) 씨가 갱목이 무너지면서 꼼짝없이 갇히고 만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태풍이 분 것은 아니다. 그 무렵 광산 매몰사고는 흔한 것이었고 수없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에 언론에서도 보통 사고기사로 취급됐다.

광산 측에서도 구조작업을 서둘렀지만 파이프 설치가 실패로 끝나는 등 장애물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진리가 지하 125m 막장에서 일어났다. 김창선 씨는 이곳에 오기 전 해병대에서 근무했고 특히 통신병이었다. 그래서 막장에 설치된 갱도 연락용 전화기를 무너진 흙더미 속에서 찾아냈고 이것을 이리저리 조립하여 사무실과 통화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것은 기적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살아 있다!" 생사를 모를 뿐 아니라 죽었을 가능성이 높은 때에 지하에서 전달된 산자의 음성은 국면을 바꾸어 놓았다.

또한 이 때 ‘행운의 조연자’가 나타났다. KBS 대전방송 오철환 기자가 아이스박스만큼 큰 구닥다리 녹음기를 메고 현정에 나타났는데 때마침 구조팀과 김창선 씨가 전화 통화하는 현장을 함께 한 것이다.

오 기자는 흥분해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녹음을 시작했다. “꼭 하고 싶은 말씀은?”, "우리 정애(딸)야, 경복이(아들)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

지하에 갇힌 한 아버지의 이 순박한 목소리는 그날 밤 전국 뉴스로 생생하게 전달됐고 전국민이 감동에 휩싸였다. 여기저기 교회와 사찰에서 김창선 씨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기도회와 법회가 열렸고 신문 방송은 연일 이 뉴스가 톱을 차지했다. 그리고 마침내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관을 급파하면서 빠른 구조를 지시했다.

이런 국민적 성원 속에 그는 그 해 9월 6일 오후 6시 마침내 구조돼 갱밖으로 나왔고 그 순간 '인간 승리'의 만세 소리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전국에서 취재진이 이 광경을 지켜봤고 그 가운데는 NHK 등 외신들도 눈에 띄었다.

▲ 김창선 씨가 활동 중인 부여 해병전우회의 환경정화운동 기념사진.  부여군 제공
▲ 김창선 씨가 활동 중인 부여 해병전우회의 환경정화운동 기념사진. 부여군 제공

한 때 너무 춥고 배가 고파 절망한 나머지 빨리 죽을 수 있게 해달라며 구조진에 호소하기도 했던 김창선 씨는 그러나 끝내 그 절망을 이기고 368시간 35분, 날수록 16일의 사투를 승리로 장식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충남 땅 청양 산속에서 한 생명의 존귀함을 온세상에 감동적으로 펼친 휴먼스토리이기도 했다.

김창선 씨는 어느덧 반세기가 흘러 90의 노인이 됐지만 부여에서 '해병전우회' 회원으로 백제문화제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땐 빠짐없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구봉광산은 과거의 영화를 땅에 묻은 채 휴광 상태인데 일부에서는 아직도 땅속에 17t 상당의 금이 있다고 보며 개발의 꿈을 그리기도 한다. 세계금융 시장에서 금의 가치가 자꾸만 커지는 상황이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황금보다 더 귀한 것이 인간임을 이 사건은 일깨워 주고 있다.

<전 세종시 정무부시장·충남역사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