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와이 진주만 역사 유적지 입구
▲ USS 애리조나 메모리얼.

당돌, 대담, 무모, 자기 환상, 집단 최면… 이즈음 일본 정부가 자행하는 일련의 무리한 자충수를 떠올리며 미국 하와이 진주만 국가사적지를 둘러보는 동안 줄곧 뇌리에서 떠나지 않은 개념들 이었다. 어찌보면 그동안 가식의 가면으로 위장된 그들의 속내가 이제 베일을 벗고 전면에 등장한 것이 아닐까.

78년 전인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이 하와이 진주만 미국 해군기지를 느닷없이 기습 공격함으로써 태평양 전쟁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확대됐다. 결국 1945년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미증유의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기까지 일본이 보여 온 행태는 이렇게 당돌함과 환상, 일종의 최면증세로 요약되는 듯 했다.

진주만, 역사의 현장은 고요한 바다와 시원한 바람 속에 더없이 평화스러워 보였지만 유물과 기념관 곳곳에서 일본제국의 야심과 지배욕의 흔적은 7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생생하게 재현돼 다가오는 듯 했다. 한국과 중국, 만주 그리고 동남아로 거침없이 확장하던 일제의 영토 확장 야욕은 태평양 한복판 천혜의 요충지 하와이 섬으로 뻗쳐왔다. 하와이를 차지해 군사기지로 삼는 것에 만족하려 했을까 아니면 하와이를 발판 삼아 미국 본토 점령이라는 황당한 꿈을 꾸었을까.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 기습 공격으로 촉발된 전화의 흔적은 특히 USS 애리조나호 기념관과 전함 미주리호 기념관에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다. 1177명의 장병, 민간인들과 함께 9분 만에 가라앉은 애리조나호의 비극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기념관인 USS 애리조나 메모리얼은 가당치도 않은 침략야욕이 빚은 참담한 전쟁의 참화를 웅변으로 보여준다. 전함 미주리호 기념관은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 현장인데 근래 극단으로 치닫는 일본 아베정권의 우경화를 바라보며 역사의 교훈을 음미해 본다.

진주만 사적지 일원에 조성된 각종 기념관의 기록물은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2차 대전의 추이와 확대, 종말을 정리해 놓았다.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지만 무모하고 당돌한 군사력 확장과 야욕의 종말이 어떤 비극을 초래했는지 진주만 2차 대전 사적지를 일본 정권 구성원들이 진지하게 살펴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일본의 여러 도발은 아직 노골적인 군사력을 수반하지는 않았다지만 무모함과 자가당착에 있어 70여 년 전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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