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상당산성을 걸으며
상태바
[에세이] 상당산성을 걸으며
  • 충청투데이
  • 승인 2019년 08월 15일 17시 37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8월 16일 금요일
  • 19면
  • 지면보기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억수 시인

가마솥더위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기습적으로 쏟아지는 소나기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한다. 여름은 더워야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요즘 이상 기온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요즈음 기운도 없고 의욕도 상실한 짜증스런 날이다. 이열치열이라 했다. 기세등등한 가마솥더위에 맞서기 위해 상당산성으로 향했다. 너무 더워서 그런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상당산성은 자연과 조화롭게 축성돼 우아한 곡선이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아름답게 펼쳐져있다. 상당의 명칭은 백제 때 청주의 지명인 상당현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백제시대 당시 고구려와 신라가 맞닿은 전략적 요충지였던 까닭에 흙으로 성을 쌓아 국경을 지켰다고 한다. 조선시대 때 충남 서산 해미읍성에 있던 충청병마절도사영을 청주로 옮겨오면서 돌을 쌓아 석성이 됐다고 한다.

매월당이 상당산성을 지나며 읊은 유산성(遊山城)의 시비를 뒤로하고 공남문에 들어서면 두 갈래의 등산로가 있다. 성벽의 정취와 성 밖 조망을 만끽하려면 성곽 길을 택하면 된다. 성곽 길과 나란히 이어지는 숲길은 중간 중간에 쉼터가 있어 아이들과 함께 걷기에 좋다. 두길 모두 공남문에서 서장대로 미호문과 진동문을 거쳐 동장대로 이어져 대략 1시간 30여분이 소요된다. 성곽을 따라 걷다보니 답답하고 무기력했던 나의 몸에 생기가 난다. 휘어 자란 소나무 사이로 바람이 불어 목덜미를 시원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깊게 심호흡을 해본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 불볕더위에 지친 상당산성의 푸른 숲이 진한 초록 향기를 후드득 쏟아 낸다. 나도 소나기에 흠뻑 젖었지만 무더위에 지친 마음이 진초록 향에 상큼하다. 짙푸르게 퍼지는 초록의 향연에 잠시 나를 돌아본다. 내가 걸어온 길은 굽이돌아 가는 길보다는 빠르게 가는 길을 선택한 것 같다. 그동안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고 허겁지겁 보낸 나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생각해 보니 나를 방어한다는 알량한 아집의 빗장을 걸고 나만의 욕심을 채우며 달려왔다. 이제는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내려놓아야겠다.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틈을 보여 주는 것이다. 틈이 없다면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올 수 없다. 내가 먼저 마음의 빗장을 풀고 문을 연다면 많은 사람이 내 안에 들어와 함께 웃고 함께 즐거워할 것이다. 아집과 욕심에 사로잡혀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아 혼자만의 생각에 괴로워했던 지난날이 부끄럽다.

삶이란 길 따라 걷다 길을 따라 돌아오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내 생의 종착지에 다다를 때까지 많은 길을 만날 것이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길은 늘 나의 발걸음을 재촉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구불구불 걸어가면서 잠시 그늘에 앉아 쉬기도 하고 맑은 옹달샘에서 목을 축이기도 해야겠다. 후드득 소나기가 내리더니 어느새 해가 반짝 났다. 잠깐 비낀 소나기 덕에 팍팍한 마음이 상큼하다. 돌아보니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