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은 대전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중 한 사람이다. 일제강점기 언론인, 교육자, 계몽운동가 등으로 활동하며 후대에 큰 삶의 족적을 남겼다. 세수를 할 때조차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는 일화는 선생의 강직함을 상징적으로 말해 준다. 민족주의 사관을 이론화 한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등 여러 역작을 낳았다. 하지만 그가 이룩한 업적에 걸맞는 조명이 이뤄졌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단재 선생 연구를 위해서는 중국과 활발한 교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월배 하얼빈 이공대학 교수는 "중국에 있는 신채호 연구의 중요한 기록들이 방치돼 있다"며 이렇게 밝혔다. 어제 대전 중구 옛 충남도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단재 신채호의 독립운동과 오늘날의 의의' 학술 세미나에서다. 김 교수는 "신채호 선생이 수감됐던 감방이 현재 전혀 고증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요한 역사적 현장이 훼손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충남 대덕군 산내면 어남리(현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에서 태어난 단재 선생은 일제에 맞서 싸우기 위해 1910년 4월 중국으로 망명했다.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에 체포된 단재 선생은 뢰순감옥에 수감 중 고문 등의 후유증으로 옥사했다. 1910년부터 1936년까지 중국에 거주하며 활약한 까닭에 현지에 선생의 족적이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련시 당안관에는 일본 헌병대 문서 자료가, 북경에는 신채호 선생의 역작 '천고'가 있으나 비공개 상태라고 한다.

단재 선생 연구를 위한 전문가를 발굴하고 선생의 저술을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김 교수의 조언이 뼈에 와 닿는다. 중국 현지의 독립운동가 선양 단체 등과 교류를 강화하는 등 단재 선생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단재 선생에 대한 재조명 작업을 통해 선생의 고귀한 정신을 계승해야겠다. 어남동에 생가와 기념공간을 꾸며놓았지만 방문객이 많지 않다고 한다. 국민들이 자주 찾는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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