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태 대전 서구청장

폴란드 바르샤바에는 겨울비가 내렸다. 1970년 12월 7일,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의 상징인 게토 기념비 앞에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었다. 의례적인 참배와 헌화를 예상했던 폴란드 국민은 깜짝 놀랐다. 사진은 전 세계로 타전됐고 “한 사람이 무릎 꿇었지만, 독일 전체가 일어섰다”며 감동했다. 빌리 브란트의 사과는 독일어로 ‘바르샤바의 무릎 꿇기(Kniefall von Warschau)’라는 이름이 붙어 참회와 용서의 상징이 됐다.

진정한 사과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또 다른 장면이 있다. 2016년 미군 참전 용사 100여 명이 노스다코타주 인디언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하는 이유는 여러분에게 상처를 안긴 부대에 속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존중하지 않았고 당신들의 땅을 오염시켰습니다” 참전 용사들은 120여 년 전, 미국 기병대가 인디언 300여 명을 학살한 사건에 용서를 구했다. 자신들이 관여하지도, 심지어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벌어진 일을 사과한 이유는 피해자들에 대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반인륜적 범죄가 그렇듯 사과에도 공소시효가 없다. 참회와 반성은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다. 국가 차원에서 그것은 야만의 시대를 극복하고 성숙한 문명국가로 성장했다는 증거다. 실제 빌리 브란트의 사과 이후 독일은 전범 국가에서 벗어나 유럽의 리더이자 대표적인 민주국가로 부상했다. 인디언에 대한 참전 용사들의 사과는 문명국가의 구성원이 약자와 피해자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8월 15일은 광복절이다. 이맘때면 기쁨보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떠올린다. 일본 아베 정부가 진정한 참회와 반성의 모습을 보인 적은 없다. 오히려 위안부 강제 동원은 없었고,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마무리되었다고 주장한다. 한발 더 나아가 동아시아를 침략과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었던 역사를 송두리째 지운 채 어두운 역사로 돌아가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나라를 문명국가이자 민주국가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매년 맞이하는 광복절이지만, 올해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지난 역사를 반성하고 사과해도 모자란 판에 아베 정권은 우리나라를 상대로 수출 규제와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 결정을 내렸다. 시대착오적인 오판이자 도발이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일본 여행 자제에 나서며 분노하고 있다. SNS를 타고 확산된 “독립운동은 못 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는 구호는 이러한 항거가 관(官)이나 일부 단체의 주도가 아니라 시민 개개인의 역사적 자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준다. 어느 때보다 매섭고 오래 가는 이유다.

대전 서구청 역시 일본 도치기현과의 교류를 잠정 중단하고, 일본 전범기업 제품 공공구매를 제한하는 조례를 제정할 예정이다. 이러한 조치는 자발적으로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나서고 있는 시민들에 대한 연대와 지지의 표시이며,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일본에 보내는 대전 시민의 강력한 경고장이다.

서구청 앞 보라매공원을 지날 때마다 평화의 소녀상을 만난다. 맨발의 소녀상은 발꿈치를 들고 있다. 겨우 살아 돌아왔지만, 소녀들의 몸과 마음은 편치 못했고 변변한 사과 한번 듣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땅에 딛지 못한 맨발의 발꿈치는 그런 고통의 상징인 동시에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은 무엇이냐”고 묻는 물음표와 같다. 이 질문에 답을 고민하는 광복절을 보내려 한다. 다시는, 지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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