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옥 ETRI 인간로봇상호작용연구실 선임연구원

필자가 딥러닝(Deep Learning)이라는 용어를 처음 들은 것은 박사과정 학생으로 연구에 한창 집중하고 있었던 2013년이었다. 이제 갓 입학한 석사과정 후배는 딥러닝 기술을 이용하면 인간 두뇌에 근사한 모델을 설계할 수 있으며 이것이 인공지능의 미래일 것이라는 당시로는 다소 허황된 말을 들려주었다. 하지만 미래는 후배의 편이었다.

딥러닝이란 인간이 이해하고 있는 세상의 정보를 기계가 학습하는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 기법의 일종이다. 딥러닝의 놀라운 성과는 카메라 영상에서 장면이나 특징 컴퓨터가 이해가능하도록 하는 전산학의 한 연구 분야인 컴퓨터 비전분야에서 인간 이상의 시각 인식(Visual Recognition) 능력을 가진 기계의 출현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주었다. 얼굴 영상 정보를 이용한 개인 식별 기술에서부터 자율 주행 자동차에서 차선/보행자/장애물 인식 기술, 의료 영상 정보 기반의 진단 기술, 사람의 음성 정보를 분석하는 음성 인식 기술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딥러닝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새로운 개념도 아닌 인공 신경망의 일종인 딥 뉴럴 네트워크(Deep Neural Network, 딥러닝에서 사용되는 네트워크 구조)의 성능이 급부상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필자는 그 이유를 인터넷,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스마트폰 성장으로 인한 학습할 데이터의 어마어마한 누적량과 병렬 컴퓨팅 기술을 이용한 시간당 처리량 증대, 그리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어느 연구자의 고집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성장한 딥러닝 기술로 인한 인식 성능의 향상은 기존의 연구-상용화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연구의 결과물인 논문이 출판되고 상용화되기까지 최소 5년에서 길면 10년까지 걸렸었던 시간은 단숨에 2~3년으로 줄게 되었다, 이는, 학계와 연구계보다 데이터의 패권을 쥐고 있는 인터넷 서비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직접 연구를 진행하여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 큰 요인으로 생각된다. 이어 후발 스타트업, 기업들은 제4차산업혁명의 흐름 속에 연구의 중요성을 스스로 체감하고 있으며 인공지능 시장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R&D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필자는 컴퓨터 비전 연구자로서 대부분의 컴퓨터 관련 기업들이 현재 딥러닝 연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기업 연구 인력 채용에서 빠지지 않는 단어가 딥러닝이며 메이저 기업 중에서 인공지능 기술에 손대지 않고 있는 기업이 없다. 이는 기업뿐만이 아니다. 많은 수의 학교들이 인공지능 관련 교수를 모시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관련 학과를 만들고 있다. 정부에서는 많은 수의 인공지능 관련 과제를 발주하고 이에 따라 연구자들도 문제를 해결할 도구로써 딥러닝 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필자는 즐겁게 딥러닝 연구를 수행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 열풍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은 15~20년마다 전성기가 오기를 반복해왔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일지 모른다. 흐름을 지속하고 빠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다음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항상 갖고 있어야만 한다. 미래에 대한 통찰력은 연구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다른 한편으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요소는 역설적으로 연구에 대한 고집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지능을 닮은 기계를 개발하려면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려는 집념 있는 또 다른 연구자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더불어 연구를 꾸준히 수행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이 뒷받침된다면, 앞으로의 인공지능 기술이 보여줄 미래가 기대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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