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각 대전시건축사회장

폭염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집이든 사무실이든 창문만 열면 뜨거운 공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밀고 들어오기에 잽싸게 다시 닫기가 일반사이다. 창 밖 도로가 바다였다면 마치 동남아 어느 나라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느낄 수 없는 기온이다. 계속되는 찬 음식의 섭취로 배앓이가 염려되어 따뜻한 커피 한잔 들고 에어콘 앞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려 본다.

공사 현장은 비가 오지 않는 한 쉬지 않는 게 정설처럼 여겨져 왔다. 새벽시간에 망치질이라도 하려면 주변 민원으로 멈추기 일쑤이고, 저녁 5시정도 되면 귀가한 가정에서의 민원이 발생하기에 현장 인부들은 주섬주섬 짐을 꾸려 퇴근준비를 한다. 결국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은 대낮에나 가능하기에 이 뜨거운 날씨에도 현장은 멈추지 못했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현장 풍속도가 바뀌어 가고 있다. 점심이후 한 두시간 작업을 쉬게 하는 곳도 생겼고, 현장에 얼음물과 식용소금, 이온음료에 대형선풍기를 비치하는 곳도 많아졌고, 심지어 일정기간 공사를 중지하고 사고를 예방하는 현장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정해진 공사기간의 준수보다 작업자의 안전과 건강을 조금은 헤아리는 당연한 배려가 생긴 것이다. 배려 받은 현장의 완성도는 당연히 높아지고 그것은 지역의 건축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주 대전지역 건축학과 교수와 건축사가 30명의 건축학과 학생들과 2박3일 캠프를 진행했다. 취침시간과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작업과 토의가 이뤄지는 커다란 작업실에서 24시간 냉방을 하면서 지냈다. 한정된 시간과 공간, 사람 안에서 발생하는 열정, 갈등, 긴장, 피곤, 성취 등 다양한 감정과 상황은 에어콘의 냉방을 무시할 정도의 뜨거운 폭염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지쳤으면서도 눈빛은 반짝거렸고, 튜터들은 예상보다 발전된 작품들을 보며 연신 박수를 보냈다. 내년에는 좀 더 기간을 늘려 완성도를 높이자는 의견도 나왔으니 말이다.

설계와 시공은 건축이라는 하나의 전공에서 나누어진다. 한 곳은 현장에서, 다른 한 곳은 작업실에서 각자의 재능과 관심에 따라 아름다운 건축문화의 완성이라는 동일한 목표점을 향해 따로 똑같이 나아가고 있다. 육체적인 땀과 정신적인 땀이 하나의 건축물을 완성하는 것이다. 애써 모아 건축을 하고자하는 건축주의 또 다른 땀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한 이런 숭고(?)하기까지 한 업역을 지켜나가는 이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었으면 한다.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삶이겠는가.

식기 전에 다 마신 커피잔을 내려놓고 저 뜨거운 폭염 속으로 힘차게 출발한다. 행복한 삶을 꿈꾸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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