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엔디컷 우송대학교 총장

강렬한 태양아래 초록이 무성해지는 8월이다. 필자는 한국 사람들에게 8월은 또 다른 의미로 뜨거운 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난 3·1절은 100주년이었고 이번 광복절은 74주년을 맞는다고 한다. 23·1절, 광복절 같은 기념일에 보여준 한국인들의 응집력과 애국심은 파란 눈인 필자의 심장도 뛰게 만들 정도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그리스 문호 카잔차키스 묘비에 쓰인 말이다. '나는 자유다'라는 말은 묘한 울림이 있다. 카잔차키스는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진정한 자아가 누리는 자유를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자유다'라고 느끼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임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과거에 얽매여 있거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 권력이나 돈, 지위에 대한 욕망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주권이나 국권을 상실한 땅에서 사는 사람들이 원하는 자유는 다른 문제다. 외부로부터의 억압아래에서 살아가는 것을 필자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러한 36년간의 억눌림에서 벗어나는 것은 또 어떤 기분일까. 지난달 필자는 솔브릿지 재학생 몇 명과 서울에서 열린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에 초대됐다. 파비앙 페논(M. Fabien Penone) 주한 프랑스 대사가 필자에게 "바스티유 기념일(프랑스 대혁명)을 축하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필자는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했다. 프랑스 대혁명을 설명하기 전에 미국독립전쟁을 이야기해야 한다. 1775년 미국 13개 식민주가 영국 본토에 대항해 전쟁을 일으켰을 때, 프랑스는 미국인에게 비밀리에 물자를 지원했다. 이후 미국은 요크타운 전투에서 승리한 후, 1783년 파리 조약으로 평화 협정을 맺었고 영국은 미국의 독립을 인정했다. 미국이 독립하고 몇 년 후, 프랑스도 자유를 위한 혁명이 일어났다.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이다. 7월 14일, 루이16세의 압제로 시민들이 투옥된 형무소인 바스티유를 습격했다. 이 혁명을 기점으로 프랑스는 군주제에서 입헌제로 바뀐다. 프랑스대혁명은 유럽 여러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데 세계사적으로 권력이 왕에서 시민에게 옮겨지는 대전환이었던 것이다.

필자가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 대혁명에 특히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필자의 할아버지 때문이다. 프랑스 장군인 마르키스 라파예트(Marquis de Lafayette)는 워싱턴 장군을 도와 미국의 독립을 이끌어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바 있다. 1901년에 태어난 필자 아버지의 이름은 찰스 라파예트 엔디컷(Charles Lafayette Endicott)이다. 필자의 할아버지는 역사를 사랑하는 분이었고, 위대한 장군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자신의 장자 이름을 '라파예트'라고 지었다. 아버지 이름을 떠올리면 미국에게 값진 자유를 선물한 프랑스의 영웅이 자연스럽게 생각난다. 자유세계에서 태어난 필자가 한국이 얻은 자유의 날에 대한 감격을 어떻게 다 짐작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자유의 감동을 매년 잊지 않고 기념하는 한국인의 열정은 기쁘게 바라보며 늘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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