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란 충북무심수필문학회 사무처장

비가 오는 날이면 그리움이 스멀스멀 올라와 과거를 소추하기 마련이다. 마음속의 일기장을 펼쳐 보았다. 흘러간 세월 속에 정지된 시간이 빼곡하기만 하다. 아마도 추억을 회상하기 때문이고 그리움이 남은 까닭인지 모르겠다. 내겐 음악의 선율 속에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그것은 음악과 깊은 인연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메모지에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라 적어 뮤직 박스로 보냈다.

대학 1학년 늦가을에 소포가 도착했다. 녹음테이프였다. 카세트의 버튼을 눌렀다. 그의 기타 연주가 이어졌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그의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왔다. 지금도 그때 들었던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의 아름다운 선율은 지금도 단풍잎만큼이나 붉은빛으로 내 삶에 노을처럼 물들여져 있다. 결혼 전날 그 테이프는 내게서 버려졌다. 그러나 내 첫사랑은 그 이후에도 음악과 함께 오랫동안 추억되고 있다.

지난 겨울 스페인을 다녀왔다. 석양 위에 둥실 떠 오른 것 같은 붉은 빛의 '알람브라 궁전' 그곳으로 향했다. 스마트폰에서 스페인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인 '프란시스코 타래가'가 작곡한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 흘렀다. 나는 음의 현을 따라 타래가 그가 걸었을 그 길을 걸었다. 타래가는 제자인 콘차 부인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마음을 받아 주지 않았다. 상심한 타래가는 실연의 아픔을 이기기 위해 스페인 곳곳을 여행 다녔다. 그러다 발길이 머문 곳이 '알람브라 궁전' 이라 하니 곡이 더욱더 애잔하게 들렸다.

무슬림 왕들의 여름 궁전인 헤네랄리페로 들어섰다. 풀과 나무로 가득한 초록의 공간 곳곳에 시원한 분수대가 맑은 물줄기를 쏘아 올리고 있다. 회랑(回廊)에서 내다보이는 멀리 시에라네바다 하얀 마을 알바이신의 전경이 황홀했다. 타래가는 이곳에서 달빛이 쏟아지는 고궁 아래 아름다운 정원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 귓전에서 타래가의 기타 연주는 계속 이어졌다. 흐느끼듯 흐르는 트레몰로는 요동을 친다. 궁전의 계단을 오르내리듯 높은음에서 낮은음으로 흐름을 타며 넘실거린다.

트레몰로 주법이 만들어내는 선율이 애절하다. 그 연유는 알람브라궁전의 서글픈 역사를 표현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슬림 왕국의 마지막 왕 보압딜은 수많은 무슬림을 보호하기 위해 페르난도 2세에게 무조건 항복했다. 그는 800년 전 그의 선조가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하면서 의기양양하게 건넜던 바로 그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보압딜은 눈을 감을 때까지 알람브라를 잊지 않았다. 그의 초라한 패스 궁전이 알람브라를 닮은 것도 추억하며 위로받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우리는 소중한 순간의 기억을 추억이라 말한다. 삶이 지치고 힘들 때나, 여백의 시간이 주어지면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지난날들을 생각하며 그리움에 젖는다. 세월이 흘러도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일이 추억이다. 그러나 추억이라고 다 좋은 기억만 남겨져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속엔 위로가 되는 사람도 있었고, 슬픔을 안겨다 주고 떠난 인연도 있다. 마음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마음을 받아줄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무수히 많은 인연과 관계하며 추억은 차곡차곡 쌓였을 것이다.

추억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느끼는 시간 여행이다. 되돌아 보니 추억은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한 시간이었고,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흔적이었다. 내 삶에 새로운 희망의 제시고, 앞으로 살아야 할 날에 대한 촉진제였다. 그랬다. 타래가도 드러내 놓고 사랑할 수 없었던 현실을 더 큰사랑으로 승화시켰는지 모른다. 손가락 끝으로 줄 위를 빠르게 타며 애절한 심정을 악보에 새겼을 것이고, 손톱으로 뜯고, 당기고 핥은 자국으로 실연의 아픔을 그리움의 멜로디로 표현했을 것이다.

곡은 처음으로 되돌아가 기억을 다시 흩고 있다. 타래가의 실연의 아픔도, 유럽에 찬란한 문명의 남기고 내쳐졌던 보압딜의 상실의 아픔도, 내 첫사랑의 기억도 선율 속에서 긴 울림으로 전해진다. 알람브라궁전은 내 삶의 추억으로 영원히 새겨져 있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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