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극 범람 속 유사 설정에 피로 누적…세분화한 직업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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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의사·변호사는 지겨워…안방극장에 뜬 특수직들

"장르극 범람 속 유사 설정에 피로 누적…세분화한 직업 발굴"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판사, 검사, 변호사부터 의사, 경찰, 교사 등 드라마 속 전문직은 이제 장르극과는 뗄 수 없는 짝이 됐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 속 전문직들은 같은 소재를 다루는 기존 작품들보다 좀 더 세분화하고 특수한 성격을 갖거나, 또는 고정관념에서 변주를 준 독특한 캐릭터로 묘사된다.

방송 4회 만에 시청률 10%(닐슨코리아)를 돌파한 SBS TV 금토극 '의사 요한' 속 주인공 차요한(지성 분)은 기존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한 외과 의사가 아닌 통증의학과 전문의이다.

통증의학이라는 소재에 맞춰 극 도입부는 요한이 현재 의술로는 도무지 치료할 수 없는 환자의 고통을 없애주기 위해 안락사를 선택했다가 옥살이를 하게 된 이야기로 시작했다. 4회에서 의사로 복귀한 요한은 앞으로 감옥에서 인연을 맺은 강시영(이세영)과 함께 통증의학의 세계를 기반으로 한 의학과 인명의 가치를 역설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을 보인다.

지난주 일제히 스타트를 끊은 수목드라마 중에서도 특수전문직 또는 기존 드라마 속 전문직의 고정관념을 깬 캐릭터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SBS TV '닥터탐정'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들이 미확진질환센터(UDC)라는 가상의 기관을 바탕으로 산업현장에서 은폐된 재해와 감춰진 질환들을 발굴하고 원인을 규명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를 소재로 한 초반 스토리부터 유명 빵집에서 발생한 직원의 원인 불명 호흡기 질환 등 다양한 에피소드가 실제 사회에서 벌어지는 산업재해들을 소재로 해 리얼리즘을 부각한다.

연출을 '그것이 알고 싶다'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만든 박준우 PD가, 극본은 산업의학전문의 출신 송윤희 작가가 맡아 이러한 특색이 더욱 극대화했다.

KBS 2TV '저스티스'와 OCN '미스터 기간제'는 둘 다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만, 기존 드라마에서 늘 보던 절대적으로 정의롭고 착하기만 한 변호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차별화를 꾀했다.

'저스티스' 속 변호사 이태경(최진혁)은 업계 최고의 승소율을 자랑하지만 '악마' 송우용(손현주) 회장과 손잡은 이후 고위층의 온갖 '쓰레기 같은' 사건들을 도맡아 웬만하면 무죄를 끌어내는 인물이다.

'미스터 기간제' 속 기무혁(윤균상)도 승소를 위해서라면 법정에서 '메소드 연기'까지도 펼칠 수 있는, 냉소적이고 능청스러운 국내 대형 로펌의 간판 에이스 변호사이다. 그는 천명고 살인사건 변호를 맡게 되면서 기간제 교사로 천명고에 위장취업한다.

물론 두 사람은 결과적으로 '저스티스'(justice, 정의)를 얘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에는 KBS 2TV '닥터 프리즈너'처럼 선(善) 또는 복수를 달성하기 위해 잠시 악(惡)의 길을 선택하기도 하는 캐릭터를 내세워 기존 장르극 속 주인공과 변주를 꾀하는 사례가 늘었다.

OCN 주말극 '왓쳐'는 익숙한 경찰이 주된 배경이지만 경찰 중에서도 감찰반을 소재로 한다. 내부의 감시자들로 불리는 감찰을 내세운 드라마는 '왓쳐'가 처음이다.

'심리 스릴러극'을 지향하는 '왓쳐'는 기존 경찰 드라마처럼 액션과 감성적인 에피소드를 크게 내세우지 않고도 감찰반의 '눈치게임'이라는 속성을 활용하며 치밀한 긴장감을 자랑한다.

이밖에 종영을 앞둔 MBC TV 월화극 '검법남녀'는 법의학의 세계로 시청자를 초대해 시즌2까지 안정적으로 제작되며 인기를 누린다. 외국 드라마 중에서는 '크로싱 조단'과 '본즈' 등 법의관을 다룬 작품이 과거에도 꽤 있었지만, 국내 작품 중에서는 '검법남녀'가 최초나 다름없어 마니아 팬층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 법의관을 배우자로 둔 민지은 작가가 풍족한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를 그려낸 것과, 노도철 PD의 감각적인 연출이 강점이다.

방송가에서는 최근 몇 년간 너무 많은 장르극이 쏟아지면서 비슷비슷한 설정과 직업군에 시청자의 피로도 높아졌기 때문에 직업을 세분화하는 시도가 나온다고 분석한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28일 "드라마 속 전문직의 세계는 일반인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긴박한 스토리를 풀어내기에 좋은 소재였다"라며 "하지만 유사한 설정으로 시청자의 피로도가 누적된 상황이라 기존에 없던 좀 더 세분된 새로운 직업과 특수한 캐릭터를 발굴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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