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의 충청역사유람] 38 牙山의 맹사성 古宅
1360년 현재 아산 배방읍서 탄생
수령과의 일화 담긴 연못 인침연…
최영이 지어준 고택… 사적 109호
마당엔 직접 심은 은행나무 2그루
고려말 장원급제… 대제학까지 지내
세종대왕 신임… 70세 잔치 베풀어
파직 4번·유배 2번 고초 겪기도…

▲ 세종대왕에게 큰 신임을 받은 맹사성은 1360년 지금의 충남 아산시 배방읍 행단길25에서 태어났다. 사진은 아산맹씨행단과 쌍행수. 고불맹사성기념관 홈페이지 참조
▲ 세종대왕에게 큰 신임을 받은 맹사성은 1360년 지금의 충남 아산시 배방읍 행단길25에서 태어났다. 사진은 세덕사. 고불맹사성기념관 홈페이지 참조
▲ 세종대왕에게 큰 신임을 받은 맹사성은 1360년 지금의 충남 아산시 배방읍 행단길25에서 태어났다. 사진은 구괴정. 고불맹사성기념관 홈페이지 참조
▲ 세종대왕에게 큰 신임을 받은 맹사성은 1360년 지금의 충남 아산시 배방읍 행단길25에서 태어났다. 사진은 맹사성표준영정.  고불맹사성기념관 홈페이지 참조
▲ 세종대왕에게 큰 신임을 받은 맹사성은 1360년 지금의 충남 아산시 배방읍 행단길25에서 태어났다. 사진은 맹사성표준영정. 고불맹사성기념관 홈페이지 참조

맹사성이 우의정 때 고향에 계신 어머님을 뵙기 위해 길을 떠났다. 먼 길을 갈 때 언제나 그렇게 했듯이 검은 소를 타고 하인도 없이 평복을 입어서 누구나 그를 우의정으로 보지 않았다.

그가 경기도를 지나 평택에 이르렀을 때 그곳 수령이 우의정 맹사성이 이곳을 지나 고향 아산으로 간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길목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우의정에게 청탁도 하고 아부를 하기 위해 서다. 수령은 화려한 관복을 차려 입고 종도 거느리고 있었다.

그런데 우의정 맹사성이 남루한 차림으로 검은 소를 타고 나타나자 수령은 '높은 분이 나타나실 텐데 어서 길을 비키라'고 호통을 쳤다. 맹사성이 '내가 아산에 사는 맹 고불이요'하고 말하자 수령은 기겁을 하고 도망을 쳤다. 고불(古佛)은 맹사성의 호다. 그런데 그 수령이 너무 급하게 도망치다 가지고 있던 관인(官印)을 연못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래서 이 연못을 그로부터 '인침연'(印沈淵)이라 했다.

맹사성은 정승에 맞는 가마나 말을 탈 수 있었지만 그렇게 검은 소를 좋아해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타던 검은 소를 그의 무덤 옆에 따로 묻어 주고 '흑기총'(黑麒塚)이라 했다. 맹사성(孟思誠)-그는 우리 역사에서 '청백리'의 대명사로 꼽힐 만큼 우리 충청도의 자랑스런 인물이다.

그는 1360년 지금의 충남 아산시 배방읍 행단길25에서 태어났다. 설화산을 뒤로 하고 있는 그의 고택은 고려 말 충신이던 최영장군이 손자 사위 맹사성을 위해 지어 준 집으로 유명한데 정면 4칸, 측면 3칸의 ㄷ자형 맞배 지붕집이어서 역사적 가치가 높아 사적 109호로 지정됐고 함께 있는 맹사성 유물전시관은 중요민속자료 225호로 지정돼 있다. 그리고 마당에는 수령 600년 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집 주인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는 데 맹사성이 직접 심은 것이다.

그는 고려 말 우왕 때 과거에 장원급제를 하여 벼슬길에 오르면서 많은 요직을 거쳐 이조판서, 좌의정, 우의정, 그리고 3정승과도 안 바꾼다는 대제학을 지냈으며 문신이면서도 국방정책을 총괄하는 '삼군도진무'(三軍都鎭撫)를 맡기도 했다. 특히 그는 세종대왕으로부터 가장 큰 신임을 받았다.

세종대왕은 맹사성이 70세가 되었을 때는 존경의 뜻으로 '괴장'이라 하여 지팡이를 하사하고 잔치를 베풀었다. 이처럼 세종대왕은 맹사성과 황희를 밑바탕으로 하여 찬란한 황금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고 사가들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맹사성의 일생이 꽃 길만 걸은 것은 아니다.

최영이 집을 지어 줄 때 까지는 비가 오면 지붕에서 빗물이 떨어 질 만큼 가난한 집에 살았고 태종임금 때는 대사헌의 직책에 있으면서 너무 엄격하게 사건을 취급하다 왕실의 인척을 건드린 괘씸죄로 사형 직전까지 갔으며 파직을 당하기 4번, 유배생활 2번을 겪어야 했다. 그 중에도 가장 가슴 아픈 것은 그의 아들이 한 사건에 연루돼 장형(杖刑)을 맞고 목숨을 잃은 것이다.

참으로 거목처럼 역사에 우뚝 선 한 인간의 그림자도 이처럼 길고 깊은 것일까?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 설화산은 이 모든 역사의 굴곡을 다 품고 있으리라. 설화산과 맹사성 고택, 그 마당에 심어 진 600년 수령의 은행나무… 이 모든 것이 어울려 하나의 '스펙트럼'처럼 비쳐진다.

<전 세종시 정무부시장·충남역사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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