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현 충남학원공제회 이사장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고 있다. 직원이 5명 이상인 국내 76만여 개업체 및 기관 직원들은 누구나 상사의 부당한 지시나 모욕 등을 더이상 묵인하지 않아도 된다. '갑질' 환경에 노출돼 있는 수많은 직장인들이 아주 작은 '안전펜스'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최근 간호계 왕따 문제로 지적된 '태움 문화'라든지, 온 국민의 공분을 샀던 IT업체 사업주의 기괴한 행동, 대기업 오너 일가의 폭언·폭력 등은 우리사회 갑질 문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였다. 정부가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이라는 근로기준법을 발의한 것도 바로 이러한 갑질 문화를 근절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좋은 취지에 비해 미완의 조치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또 갈등 해소를 위한 조치가 새로운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된다.

현행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의무 불이행시 강제 조항이 없다. 무엇보다 부당한 업무 지시라든지, 어떤 행태가 직장 내 따돌림인지 등에 대해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 오히려 혼란을 야기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고용노동부는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서는 행위,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악용하는 사례, 신체·정신적 고통을 가하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동 등을 괴롭힘의 기준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적정범위라는 것이 어디까지인지,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동은 어떤 행동까지 포함되는지 구체적 기준이 없다.

모호한 법 기준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자마자 사업장 곳곳에서 갈등이 터져나오고 있다. 시행 첫날이었던 지난 16일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한 것을 시작으로, 고용노동부로 달려가는 근로자들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노사 문제를 넘어 이제 사용자와 관리자, 노동자와 관리자, 관리자와 관리자, 노동자와 노동자 등 계층을 뛰어넘는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특히 이 법의 규정을 바라보는 시각이 모두 제각각이라는 점에서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합의된 기준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모호한 법 탓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미 사회 전반에서 악취를 풍기고 있는 갑질 문화를 더이상 두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향후 법을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지만 이에 앞서 국민들의 인식이 개선되고, 개선된 인식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나의 행동이 법에 저촉될까를 두려워하지 말고, 내 행위가 직장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닌지 먼저 생각하고, 실천한다면 좀 더 밝은 사회로 나아가는 작은 거름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싫은 것은 분명 남도 싫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우리 모두가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조금 더 배려한다면 법이 아무리 허술 하다해도 우리가 그 법에 기대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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