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사라져 가는 것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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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 사라져 가는 것들을 위하여
  • 충청투데이
  • 승인 2019년 07월 23일 16시 21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7월 24일 수요일
  •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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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

눈앞이 온통 회색빛이다. 세월의 더께가 앉은 슬레이트 지붕과 시멘트 담장이 시선에 닿는다. 낮은 담장 안을 기웃거리니 폐가가 된 지 오래인 것 같다. 칙칙한 빛을 상쇄하려는가. 담장 앞에는 상추와 고추, 도라지꽃이 피어 반긴다. 또 다른 빈집 기와지붕 처마엔 엮은 마늘이 마르고 있다. 이웃 주민이 처마를 빌린 것일까. 동네를 걷는 동안 빈집이 군데군데 보이고, 그 빈집에 생기를 불어넣는 이웃이 있다.

전봇대에 얼기설기 엮인 전깃줄이 반갑다. 도시에선 사라진 전봇대고, 지중화로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전봇대 하나에 여러 집의 삶이 이어지리라. 전깃줄을 따라가니 좁은 골목길, 그 길을 오르며 잊고 지냈던 익숙한 풍경들이 떠오른다. 사라져간 물상들이 하나 둘씩 일어나는 착각이 든다. 그것도 잠시 현실의 눈은 도시화에 떠밀려 옛 모습이 사라져가는 한 맺힌 사연이 절절한 안덕벌을 확인한다.

안덕벌을 돌아보며 내내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이다.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된다는 것이다. 보도연맹 관련 추적자인 박만순 선생에게 안덕벌이 과부촌이 된 사연을 듣는다. 한 청년을 살리고자 애쓴 이야기며, 열 명의 젊은 목숨을 앗아간 이야기에선 차마 입으로 담을 수가 없다.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을 더할수록 머릿속에 그려지며 가슴이 아프다. 살인자도 법의 집행 아래 단죄를 받건만,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같은 동족을 학살할 수 있는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앗아간 그날, 신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던가 보다.

보도연맹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은 부녀자가 40명이란다. 남편을 잃은 아녀자는 자식을 먹여 살려야 했기에 슬픔에 빠져 지낼 수만 없었다.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콩나물을 기르고 두부를 빚어 파는 일. 그것들을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남주동과 육거리로 걸어가는 행렬을 상상해보라. 전쟁은 이렇듯 수많은 가정을 처참한 현실로 내몬 것이다. 또한 학살을 행한 자들은 진실을 숨기고자 또 얼마나 거짓으로 포장했을까. 역사의 치부는 종잇장처럼 가벼워 진실은 누군가에 의하여 결국 드러나고야 만다는 걸 그들은 몰랐을까.

지금도 우리의 삶의 문화가 세월 속에 묻히거나 의도적으로 사라지는 부분이 있다. 1985년 산업공단 내 기업에 입사하여 삼십 년이 흐른 지금, 공단은 많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산업시설 부지에 백화점이 들어서고 아파트가 즐비하다. 내가 처음 본 3공단 직장 앞은 황무지였고, 출근하고자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만 했다. 버스는 공단오거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쏟아놓는다. 삼화전기와 기상대를 지나 걸어가던 길, 나는 그 길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길목에서 만난 무수한 여공들은 어디로 갔을까.

1980년대 청주 산업 문화를 이끌었던 기업 중 하나가 대농이다. 어마어마한 섬유공장과 그 안에서 주경야독하던 여공들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없다. 그나마 폐공장 연초제조창이 문화제조창으로 거듭날 기회를 얻은 것인가. 오래된 건물이 뼈대를 남긴다고 그 문화가 지켜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 공간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바로 알고, 기록하고, 기억해야만 한다. 누군가에 의하여 화석처럼 굳어버린 공간에 진실한 생명의 문화를 불어넣어야 한다. 적어도 사라지는 것들을 위한 기본 예의를 지키자. 수치스러운 과거도 우리의 문화와 역사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의 흔적이자 후세에 남을 유산이기 때문이다.